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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이스라엘

이스라엘 열흘째 날-1(다윗성, 고고학 발굴지, 히스기야 터널, 실로암 못)

by 아르니온 2019. 12. 19.

다윗성은 해발 620~720m에 이르는 성전산(모리아산)의

남쪽에 위치해 있다.

다윗이 여부스 사람들로부터 빼앗아 헤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수도를 이전하면서

이곳을 다윗성이라 불렀다.

 

다윗성에 방문하면 먼저 영상관람을 한 후 고고학 발굴 장소를 둘러본다

그리고 지하에 있는 여부스 수구를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히스기야 터널을 통과한 후

실로암 못에 도착하는 일정으로 진행된다

 

사진출처: 역사드라마로 읽는 성경 류모세 지음 참조

다윗성은 그림에서 보면 성전산 아래 기드론 골짜기를 끼고

남쪽으로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기드론 골짜기에는 기혼이라는 샘이 있는데 이 샘은

물의 근원지라 비가오지 않는 이스라엘의 기후적 악조건 속에서도

도시가 발전할 수 있었다.

 

사진출처: 고고학으로 읽는 성경 임미영 지음 참조

사진은 다윗성의 실제모습을 3D 입체로

재현해 놓은 것이다.

 

다윗성은 예루살렘 성벽 남쪽으로 나 있는 분문을 통해 들어간다.

 

다윗성 입구!

 

다윗하면 떠오르는 악기!

사울을 위해 다윗이 연주했던 악기를 조형물로 만들어 놓았네요

 

매표소를 지나면 바로 입구로 들어가서

다윗성에 관련된 영상을 한편 봅니다.

그리고 나서 2층으로 올라가면 고고학 발굴지를 직접 볼 수 있답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굉장히 친숙한 다윗이 고고학적으로는

굉장히 우리를 난처하게 만드는 인물이다.

그것은 다윗에 관한 이야기는 성경 외에 고대근동의 어떤 문헌에도

등장하지를 않기 때문이다.

단지 1994년 텔 단에서 발견된 아람어로 기록된 승전비에

남왕국 유다의 왕가를 다윗의 집이라 불렀다고 제시돼 있을 뿐,

다윗을 역사적 인물로 확약할 수 있는 학문적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다윗성의 발견과 고고학적 발굴은

성경을 증명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역사적 과업인 것이다.

 

이 발굴지는 1978~1985년 히브리대학교의 이갈 실로 교수에 의해서

대대적으로 발굴이 진행되었다.

이 발굴 작업을 통해 실로교수는 예루살렘의 근원지가 이곳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냈으며

여부스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과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축대를 발견했다.

특히, 이곳에서는 무기들, 불에 타 숯덩이가 되어버린 목재 가구들의 잔해

서기관의 인장, 아세라 우상

그리고 완전히 파괴된 건물들의 잔해가 발견되어

성경의 기록을 생생하게 증명해 주고 있다.

성경에는 밧세바 사건이 나온다

이곳이 다윗성이라면 저 건너편 주택가는 성 아래 위치해 있는

구조적 특징으로 인해

성경의 사건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다윗 성 G구역에서 발견된 "계단식 구조물"(아히엘의 집)

1978년 이갈 실로에 의해서 다윗성(G지역)에서 51개의

인장이 발굴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장이 발견된 장소를 "인장의 집"이라고 부른다.

이 인장들의 이름들은 대부분 성경에 등장하는 이름들이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은 렘36:10~12절에 등장하는

사반의 아들 서기관 그마랴도 나왔다.

 

아히엘의 집

지금 보이는 곳은 다윗성의 G구역이라는 곳이며

계단식 구조물로 보이는 경사면이

마잘박사와 캐년 여사가 발굴한 다윗성의 북쪽 끝부분을

지탱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다윗성에서 보면 기드론 골짜기가 생생하게 보인다.

한때 다윗은 압살롬을 피해 이곳으로 도망을 가야했던 길이기도 하다

 

이곳은 여부스의 수구와 히스기야 터널로 들어가는 입구!

 

지금은 이렇게 원형 계단을 잘 설치해 놓아서

동굴로 들어가기가 용이하다

 

이곳은 "여부스 사람의 수구"로 1867년에 영국인 찰스 워렌이

발견하였다.

여부스 사람들이 다윗 이전부터 상수도 시설로 사용하던 곳으로

다윗은 이곳을 통해 철옹성과 같은

예루살렘 성을 정복하였다.

 

이 수구는 위에서 바닥까지 15m 되는 곳으로 굉장히 높은 구조로 되어 있다

그래서 다윗이 이곳을 정복할 때

정말 용감한 군사가 아니면 이곳으로 진입해서

거꾸로 올라가 여부스 군사를 제압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지형적 잇점으로 인해 여부스 사람들은 다윗이

이곳을 점령하러 왔을 때 코웃음을 쳤던 것이다.

 

안에 들어가니 히스기야 터널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모형도를 잘 만들어 놓았네요

신기한 것은 이 터널은 양쪽에서 파들어 가서 만났다고 하네요.

 

실로암 비문

히스기야 터널이 끝나기 약 6m 전에 고대 히브리어로 쓰여진 비문이

AD 1880년에 발견되었다.

비문의 내용은 양쪽 터널의 일꾼들이 서로의 정과 망치 소리를 들으면서

파내어 오다가 서로 만났을 때 기쁨과 감격을 기록했다고 하네요

 

우기때는 물이 허리까지 차지만

건기때는 무릅정도 물이 차있다.

이곳을 통과할 때는 샌달을 신어야 하고 손전등이나

머리에 쓰는 헤드전등이 있으면 좋다

동굴의 높이가 낮은 곳도 있어서

키가 크신 분은 허리가 좀 불편할 수도 있다.

 

물이 시원하니 여름에는 통과할 만 하다

 

우리를 가이드해주신 목사님이 히스기야 터널은

자신에게 최적화 되어 있는 곳이라고 하신다

즉 본인은 키가 작아서 허리를 한 번도 숙이지 않고 통과 할 수 있기에

불빛이 없어도 믿음으로 통과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단다. ㅎㅎ

 

높은데는 이렇게 높지만 중간 중간은 상당히 낮은 지역도 많다

머리를 조심하지 않으면 이마에 혹이 날 수도 있다.

 

실로암 비문인데 이것은 모형도 이다

이것을 보면 실로암 못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터널은 히스기야 왕이 701년 앗수르의 산헤립의 침공을 대비해 만든 인공터널로

그 길이가 약 533m에 이른다.

이 터널은 양쪽에서 뚫기 시작해서 S자 형태로 만들어져 있는데

놀랍게도 양쪽 터널의 오차는 30Cm 정도밖에 차이가 안날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 졌다고 한다.

 

히스기야 터널을 빠져나오면 이렇게 실로암 못에 이르게 된다.

실로암 못은 기혼샘의 종착지 같은 곳이다.

 

실로암 못이 우리에게 유명한 것은

예수님께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하는 방법으로 실로암 못에 가서

눈을 씻으면 눈이 떠질 것을 말씀하셨는데

그대로 순종한 소경이 눈이 떠져서 예수님께 나아온 사건을

요9장에 기록하고 있어서 우리에게는 익숙한 지명이다.

 

히스기야 터널을 통과한 사람들이 하나 둘씩 나오고 있네요

 

보이는 곳은 실로암 연못으로 비잔틴 교회 유적이 있는 POOL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계단을 따라 올라가야

새로 발견된 실로암 연못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학자들은 실제로 예수님의 기적이 일어난 장소가

여기라고 언급하고 있다.

 

왼쪽은 수로이고 오른쪽 계단 아래가

실제로 실로암 못이 된다.

 

예수님 당시 실로암 못 복원도!

 

바로 이곳이 소경이 눈을 고침 받은 장소라고

알려진 곳이다.

 

"보냄을 받았다"라는 실로암 못!!!!

예수님의 기적이 생생히 기록된 이곳에서

우리는 소경이 눈을 뜬 기적에만 관심을 갖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진정 우리가 새겨야 할 것은 보냄을 받아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문득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