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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이스라엘

이스라엘 - 넷째 날1(엔게디, 맛사다, 롯의 처 기둥)

by 아르니온 2019. 9. 27.

엔게디

엔게디는 유대 광야의 동쪽, 사해에서는 서쪽 해변가에

위치하고 있는 오아시스이다.

사해 주변에 있는 몇 몇 샘은 소금 성분을 가지고 있지만,

엔게디의 물은 담수다.

덕분에 이곳은 광야에서는 볼 수 없는 온갖 꽃과 나무로 덮여 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숨어지냈던 곳 중에 한군데가 바로 엔게디다.

 

히브리어로 "엔"은 샘이며 "게대"는 새끼 염소를 말한다.

이곳에 오면 이런 야생 염소들이 많이 보인다.

광야에서 볼 수 있는 염소들!!!!

 

야생 염소지만, 사람을 그렇게 무서워해서 피하지는 않는다.

 

걸어서 20~30분 쯤 가면 깊은 엔게디 계곡을 볼 수 있고,

다윗이 숨어 지냈을 것 같은 동굴들도 보인다.

특히, 다윗의 폭포는 한 낮에 더위를 한방에 날려버릴 듯한

시원함과 청량함을 느끼게 해준다.

 

엔게디는 이런 동굴이 많이 보인다.

다윗이 숨어서 지내기에는 안성맞춤 인 것 같기는 하다.

 

한 참을 걸어가다 뒤를 돌아보면 이렇게 사해가 보인다.

다윗도 사울을 피해 이곳에 도망왔지만,

저 멀리 보이는 사해를 바라보면서 많은 위안을 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광야 계곡에서 물이 보이기 시작하네요.

 

드디어 다윗의 폭포 도착!!!

 

 

공원입구에서 40분 정도 걸어가면 도착하는 다윗의 폭포!

함께간 일행들만 없었어도

바로 수영모드인데......

시간이 되는 분들은 간단하게 수영하는 것도

색다른 체험이 될 것 같네요.

실제로 근처에 이 보다는 작은 샘들이 있는데

그곳에서 외국인들이 물놀이를 하기는 하네요.

 

그 유명한 다윗의 시편 23편!!!

 

광야에서 만난 폭포를 바라보니

다윗이 고난과 환란중에도 하나님께 감사의 시를 올렸다는

말씀이 다시한번 가슴에 와닿는다.

 

마사다

마사다는 사해에서 4Km 거리의 유대 광야에 있으며,

높이 410m, 길이 600m, 폭 320m의 암반 요새이다.

마사다는 하스몬 가의 지배자에 의하여 축조되고

BC 35년에 유다의 헤롯 왕이 개축하였다.

 

"마사다"는 히브리어로 "요새"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현장을 와보면 그 말뜻의 의미가 실감난다.

 

마사다가 유명해진 것은 헤롯이 요새로 건축하여

아름답고 웅장한 건축미를 자랑했던 장소였으며,

AD66~73년 제1차 유다전쟁의 막바지에 E. 벤 야이르가

여자와 아이들을 포함한 960명의 열심당원들이 이곳으로 피난을 와서

마지막까지 로마에 대항해 3년 동안 저항하다 결국

전원이 자결하므로(여자와 아이들 몇 명을 살아남음) 저항했던 장소이기에 유명해졌다.

 

입구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면 된다.

물론 걸어서 올라갈 수도 있다.(쉽지는 않다)

지금도 이스라엘 군인들은 장교 임관식 때 이곳에 와서

충성 맹세를 한다.

유대인인들이 예루살렘 다음으로 많이 방문하는 곳이 바로 마사다이다.

 

마사다를 재현해 놓은 모형도

 

마사다에 대한 기록은 오직 요세푸스의 유대전쟁사라는 책뿐인데

요세푸스는 로마전쟁 때 변절자로 낙인이 찍혀서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잊혀진 존재였다.

또한, 마사다 역시 400m 이상의 높은 언덕 위에 있었기에

사람들의 방문이 오랫동안 거의 없었다.

덕분에 지난 2000년 동안 유적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는데

1963~1965년 히브리대 교수 야딘과 수백 병의 유대인 참가자들의 발굴작업을 통해

드디어 마사다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야딘 교수의 고고학적 야망으로 인해 마사다를

거의 90% 이상 드러내고 다시 재현해 놓았기에

현대에 더 좋은 고고학 기술을 발굴에 도입하거나 적용하기가 어려워졌다.

 

보이는 건물은 비잔틴 수도원이며,

앞에 있는 돌들은 로마군이 마사다로 던진 돌 포탄이다.

 

마사다를 걸어서 올라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서쪽으로 나 있는 능선으로

로마군의 주 공격로이기도 하였다.

 

로마는 보이는 곳에 진지를 구축하고 3년 동안

마사다를 함락하기 위해 대치해야만 했다.

천하제일이라는 로마군단도 이 마사다를 함락하기 위해

3년 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는 것은 마사다가 얼마나 요새화 되어 있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북쪽에 있는 헤롯궁전으로 가는 길!

앞으로는 광야와 저 멀리 사해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궁전을 잘 지어놓았다.

 

이두메 출신인 헤롯이 유대인의 왕으로 오자

정통 유대인들은 그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살해된 자신의 아버지처럼

늘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야 했던 헤롯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이곳 마사다와 헤로디온, 마케루스에 요새를 지었다.

 

궁전은 세 개의 계단식으로 건축되었으며,

궁전에서 바라보는 유대광야와 사해의 모습은 절경이어서

헤롯의 화려한 건축물을 자랑하는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북쪽 궁전 앞에 있는 궁전모형이다.

 

이곳은 마사다의 건물 중 유명한 곳으로

로마의 목욕탕을 연상시키는 작은 건물이다.

바닥은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이런 목욕탕은 전통적으로 로마의 문화인데

이곳에서는 로마가 좋아하는 동물이나 신의 형상이 발견되지 않았고,

오히려 꽃이나 식물, 기하학적인 무늬들로 마사다 전체를 장식하고 있어

유대인의 예술적 기조를 따르는 특징이 있다.

 

외부에서 불을 지펴 뜨거운 공기로 바닥을 지피고,

벽의 파이프를 따라  뜨거운 공기가 올라가 벽까지 데피도록 고안된 목욕탕시설이다.

 

비가 많이 내리지 않은 지역에서 이곳에 내리는 모든 비를

한 방울도 흘려보내지 않고 이런 수로를 통해

모든 물이 물 저장소에 들어가도록 고안된 마사다이다.

그러니 헤롯이 물이 귀한 곳에서 목욕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헤롯을 건축의 천재라고도 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아름답게 만든 헤롯의 궁전은 정작

헤롯이 오래 머물지는 못했던 것 같다.

오히려 후대에 유대의 최후 항쟁지로 활용되어

오늘날 유대인에게 있어서는 예루살렘 다음으로 최고의 성지로 꼽히는 곳이

바로 마사다이다.

 

마사다에서 보이는 사해바다!

사해는 북쪽 갈릴리 호수의 물이 요단강에 흘러내려 모인 곳으로

더 이상 흐리지 않고 한곳에 고여 있어 바다가 아닌 호수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다.

이곳은 물 유입의 양보다 증발 양이 더 많아 염분이 매우 높아

사람이 가만히 누워있어도 저절로 뜨는 기이한 바다이다.

 

대부분 바다의 염분이 3~5%인데, 이곳은 30%가 넘으니

얼마나 짠지 물을 한 번 찍어 먹어보면 실감하게 된다.

 

사해바다 근처에 있는 일명 롯의 아내라고 불리는 소금기둥이다.

이곳은 이집트에서 국경을 통과하고 북쪽으로 달리다 보면 사해 근처에 위치하고 있어

버스에서 잠깐 내려 기념촬영을 하고 소금 덩어리 하나 챙겨서

다시 휑하니 출발하는 그런 곳 중에 한 군데 이기도 하다.

 

물론, 이것은 이스라엘에서 주장하는 롯의 아내 즉 소금기둥이지만

창세기 19장에서 말하는 소돔과 고모라 지역이 이곳인지는

아직까지 고고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없다.

 

그러나 이 지역 일대가 소돔과 고모라 사건을 연상케하는 곳이니

사실여부를 따지기보다는 창세기 19장 사건을 통해

오늘날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