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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이스라엘

이스라엘 - 셋째 날2(쿰란, 엘리사 샘, 여리고 시험산, 삭개오 돌무화과 나무)

by 아르니온 2019. 9. 20.

쿰란 동굴

쿰란은 2천년 전 성경의 사본들이 쓰여진 장소이며, 이 주변의 동굴에서

2천년 동안 두루마리 사본들을 보관해왔다.

1947년 처음으로 7개의 사본이 베두인 소년에 의해서 발견된 이후,

주변 11개의 동굴에서 수 만개의 이르는 사본 조각들과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이곳에서 발견된 7개의 두루마리 사본은

지금 예루살렘의 성서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쿰란에 도착하면 먼저 이곳으로 들어가서 비디오 시청을 하고

유물들을 관람할 수 있다.

 

쿰란을 다 둘러보고 나오면 바로  옆에 쇼핑매장이 있는데

이곳에서 사해소금으로 만든 비누와 로숀을 많이 산다.

지인들을 위한 선물을 준비하려면 이곳에서 사는 것이 가장 좋다.

왜냐하면 이곳에서 파는 물건은 품질이 굉장히 좋기 때문이다.

 

두리마리 사본이 보관되어 있던 항아리!!!

모형이다. 진본은 박물관으로....

 

베두인 소년(무하마드 엣 디브)이 잃어버린 양을 찾아 다니다

혹시나 해서 동굴에 돌을 던졌는데

항아리 같은 것이 깨지는 소리가 나서 들어가 보니 하나의 항아리에서

세 개의 두루마리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즉, 이 동굴에서 이사야 전권, 공동체 규율서, 하박국 주석, 이사야의 두 번째 사본,

감사 찬송집, 전쟁 문서, 그리고 창세기 외경 두루마리 등 총 7개의 사본을 발견하였다.

 

소년은 이것들을 베들레헴 상인에게 가져가서 싼 값에 팔았고

내용물을 확인한 상인이 히브리대학의 고고학 교수 수케니에게

3개의 사본을 팔았고, 나머지 4개는 시리아 정교회 대주교 아타나시우스 사무엘에게 팔았다.

사본은 이렇게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이곳에서 발견된 이사야 사본은 그 동안 우리가 가지고 있던 가장 오래된 알레포 사본보다

무려 1,000년이나 앞서는 귀한 사본이었다.

 

이것은 쿰란 지역에 살고 있던 에세네파 공동체가

사용했다고 보는 토기들이다.

 

보이는 것은 공동체가 식탁으로 사용한 돌 식탁이다.

 

당시에 발견된 성경 사본!

현재 발견된 사본 중에 원본에 가장 가깝다.

 

이 사본은 당시 동굴 맞은편 언덕에 살고 있던 에세네파 공동체가

필사를 한 후 주후 68-70년 발발한 로마와 유대인들의 전쟁으로 인해

사본들을 근처 동굴에 숨겨놓고 피난을 갔다가 돌아오지 못하자

숨겨진 필사본들이 2000년 가까이 동굴에 보관되었던 것이다.

 

비디오 시청과 유물을 관람하면 이곳으로 나와서

실제로 성경사본이 발견된 동굴과

에세네파가 거주했다고 알려진 유적을 보러 간다.

 

쿰란은 경치가 참 좋다. 서쪽으로는 광야가 펼쳐져 있고

동쪽으로는 사해바다가 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다.

 

쿰란은 이런 동굴들이 근처에 25개 이상 있다고 한다.

 

쿰란 6호 동굴

현재까지 근처 동굴에서 발견된 사본은 972개로 알러져 있다.

 

이곳은 목욕을 하던 곳!

 

1949-1956년 드보 신부는 사해 사본이 발견된 동굴 맞은편에서

"쿰란"이라 불리는 언덕에서 유적을 발견했다.

이 유적에서는 주전 8-7세기 남왕국 유다의 흔적들도 발견되었다고 한다.

드보 신부는 발견된 쿰란 유적지가 에세네파의 거주지였다고 확신했다.

이들은 70년 전쟁시 로마를 피해 근처 동굴에 사본을 숨기고

피신했다고 보고 있다.

 

침례요한도 한 때 이곳에 있었다는 학자들도 있다.

 

식당!

 

저장실!

 

유적지의 크기로 봐서 150-200명 정도가 공동체로

있었다고 보여진다.

 

동쪽으로 보이는 사해바다!

 

유적지 맞은편 쿰란 4호 동굴

이곳에서 발견된 사본의 40%는 에스더를 제외한 모든

성경을 포함하고 있다.

사본은 대부분 히브리어로 기록되었으며 아람어와 헬라어 기록도 있다.

또한, 파피루스에 쓰여진 문서도 있었으나 많은 양의 사본이

양피지에 쓰여 있었다.

 

이곳에 사본을 숨긴 사람들을 에세네파라고 주장하는데

그 근거로는 이 4호 동굴에서 발견된 4QMMT 문서에 기록된

정결례의 율법과 축제 달력이 사두개 종파의 것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곳은 여리고 지역에 위치한 엘리사의 샘 입구이다.

길을 건너면 여리고 성터이며,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면 시험산에 오를 수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정원이 깔끔하게 반겨준다.

 

에인 에스 술탄이라 불리운다.

이곳이 바로 열왕기하 2장에 배경이 되는 곳이다.

 

엘리사가 이곳에 방문하였을 때 성안의 사람들이 물이 좋지 않다는 말에

물 근원에 소금을 뿌려 수질을 좋게 했다는 샘으로

지금도 이 샘에는 물이 흐르고 있다.

 

대부분 건물 외부에서 기념사진만 찍고 돌아가는데

가이드에게 말을 해서 내부로 들어가면

샘이 솟아 흐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물은 해발 -1300피트 아래서 솟아나는 샘물로

BC 8000년 전부터 흘러나오고 있다고 한다.

 

여리고는 이러한 샘물이 많이 있기에

오래전부터 도시가 형성되었고,

풍요로운 휴양도시로 유명하였다.

 

엘리사 샘을 나오면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는 시험산이 나온다.

 

여리고는 현재 해수면 아래 258m에 위치해 있다.

가나안 정복 당시 요셉의 자손에게 할당된 땅이었다.

 

"여리고"라는 이름은 여러 유래가 있는데 그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달을 의미하는 "야레아흐"와 관련이 있고,

달 신을 섬기는 중심지가 이곳이여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고 본다.

 

민수기 13장에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그 땅에 과일을 따다가 백성에게 보이고

그곳은 풍성하다고 보고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여리고는 과일이 풍성한 지역이므로

혹시 이곳에서 이런 과일을 따 온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여리고를 방문하여도 시험산을 조망하는 코스로 오면

이곳은 그냥 지나치지만 시험산을 올라가는 여정으로 잡으면

받으시 이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야 됩니다.

물론 걸어서도 갈 수 있지만, 시간과 체력이 엄청나게 필요하답니다.

 

한 7-8명 정도 탈 수 있는 케이블 카 같은데

바닥이 보이니 약간 무서울 수도 있답니다.

 

케이블 카를 타고 올라가다보면

여리고 유적지를 볼 수 있답니다.

 

여리고는 강우량이 일 년에 160mm 밖에 안되지만,

보이는 것처럼 샘들이 많아서 나무와 풀들이 무성하게 자랄 수 있다.

 

이런 샘들이 많은 여리고는

이미 주전 9000년경부터 인류가 살고 있었던 흔적이 발견되었으며,

이후 20개 이상 거주지로 사용된 층들이 발견되었다.

 

여리고 시험산에 오르면 저 멀리 보이는 그리스 정교회의 수도원이 보인다.

 

이곳은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갔다 올 수 있다.

가는데 한 10분 이상 걸리는 것 같다.

 

시험산에 오르면 저 멀이 여리고가 한 눈에 보인다.

 

마태복음 4장에 보면,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중 8절에 보면 마귀가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 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면서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주겠다다고 시험한다.

바로 그 배경이 되는 곳이 여리고 시험산이다.

 

물론, 지금은 유다가 멸망한 이후 오래도록 폐허가 되었다가

많은 문명들이 들어서면서 흥망성쇠의 길을 걸어왔다.

그러다 주후 70년 로마가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이후 여리고는

더 이상 중요한 도시가 되지 못해 발달하지 못하였으나

한 때 많은 문명들이 이곳을 개발하고 도시를 세웠던

찬란한 문명의 발생지가 바로 여리고였다.

 

그렇기에 마귀는 이곳으로 예수님을 데리고 와서 천하만국이라 칭하며

자신에게 경배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곳은 삭개오 뽕나무라는 곳으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다가 들르신 곳인데,

예수의 소문을 듣고 세금 징수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올라갔다고 하는 나무이다.

 

이 나무가 실제로 삭개오가 올라간 뽕나무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삼거리에 자리잡고 있는 나무를 보면

2000년 전 예수님이 이곳을 지나가시다가

어느 한 나무 위에 올라가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한 사람의 모습이 떠오른다.

 

옛날 성경에는 삭개오가 올라간 나무를 뽕나무로 번역해 놓았다.

그러나 개역개정판에는 돌무화과 나무로 다시 번역을 했다.

그것은 원래 히브리어로 "쉬크마" 라는 단어를 잘못 번역하여 뽕나무로 해석했던 같다.

그러나 지금은 원어에 충실하게 돌 무화과 나무라고 번역을 했다.

 

사진을 자세히 봐도 무화과 열매를 많이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