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이스라엘2019. 9. 27. 15:59

엔게디

엔게디는 유대 광야의 동쪽, 사해에서는 서쪽 해변가에

위치하고 있는 오아시스이다.

사해 주변에 있는 몇 몇 샘은 소금 성분을 가지고 있지만,

엔게디의 물은 담수다.

덕분에 이곳은 광야에서는 볼 수 없는 온갖 꽃과 나무로 덮여 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숨어지냈던 곳 중에 한군데가 바로 엔게디다.

 

히브리어로 "엔"은 샘이며 "게대"는 새끼 염소를 말한다.

이곳에 오면 이런 야생 염소들이 많이 보인다.

광야에서 볼 수 있는 염소들!!!!

 

야생 염소지만, 사람을 그렇게 무서워해서 피하지는 않는다.

 

걸어서 20~30분 쯤 가면 깊은 엔게디 계곡을 볼 수 있고,

다윗이 숨어 지냈을 것 같은 동굴들도 보인다.

특히, 다윗의 폭포는 한 낮에 더위를 한방에 날려버릴 듯한

시원함과 청량함을 느끼게 해준다.

 

엔게디는 이런 동굴이 많이 보인다.

다윗이 숨어서 지내기에는 안성맞춤 인 것 같기는 하다.

 

한 참을 걸어가다 뒤를 돌아보면 이렇게 사해가 보인다.

다윗도 사울을 피해 이곳에 도망왔지만,

저 멀리 보이는 사해를 바라보면서 많은 위안을 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광야 계곡에서 물이 보이기 시작하네요.

 

드디어 다윗의 폭포 도착!!!

 

 

공원입구에서 40분 정도 걸어가면 도착하는 다윗의 폭포!

함께간 일행들만 없었어도

바로 수영모드인데......

시간이 되는 분들은 간단하게 수영하는 것도

색다른 체험이 될 것 같네요.

실제로 근처에 이 보다는 작은 샘들이 있는데

그곳에서 외국인들이 물놀이를 하기는 하네요.

 

그 유명한 다윗이의 시편 23편!!!

이곳에 와서 광야에서 만난 폭포를 바라보니

다윗이 고난중에 환란중에도 하나님께 감사의 시를 올렸다는

말씀이 다시한번 가슴에 와닿는다.

 

마사다

마사다는 사해에서 4Km 거리의 유대 광야에 있으며,

높이 410m, 길이 600m, 폭 320m의 암반 요새이다.

마사다는 하스몬 가의 지배자에 의하여 축조되고

BC 35년에 유다의 헤롯 왕이 개축하였다.

 

"마사다"는 히브리어로 "요새"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현장을 와보면 그 말뜻의 의미가 실감난다.

 

마사다가 유명해진 것은 헤롯이 요새로 건축하여

아름답고 웅장한 건축미를 자랑했던 장소였으며,

AD66~73년 제1차 유다전쟁의 막바지에 E. 벤 야이르가

여자와 아이들을 포함한 960명의 열심당원들이 이곳으로 피난을 와서

마지막까지 로마에 대항해 3년 동안 저항하다 결국

전원이 자결하므로(여자와 아이들 몇 명을 살아남음) 저항했던 장소이기에 유명해졌다.

 

입구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면 된다.

물론 걸어서 올라갈 수도 있다.(쉽지는 않다)

지금도 이스라엘 군인들은 장교 임관식 때 이곳에 와서

충성 맹세를 한다.

유대인인들이 예루살렘 다음으로 많이 방문하는 곳이 바로 마사다이다.

 

마사다를 재현해 놓은 모형도

 

마사다에 대한 기록은 오직 요세푸스의 유대전쟁사라는 책뿐인데

요세푸스는 로마전쟁 때 변절자로 낙인이 찍혀서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잊혀진 존재였다.

또한, 마사다 역시 400m 이상의 높은 언덕 위에 있었기에

사람들의 방문이 오랫동안 거의 없었다.

덕분에 지난 2000년 동안 유적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는데

1963~1965년 히브리대 교수 야딘과 수백 병의 유대인 참가자들의 발굴작업을 통해

드디어 마사다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야딘 교수의 고고학적 야망으로 인해 마사다를

거의 90% 이상 드러내고 다시 재현해 놓았기에

현대에 더 좋은 고고학 기술을 발굴에 도입하거나 적용하기가 어려워졌다.

 

보이는 건물은 비잔틴 수도원이며,

앞에 있는 돌들은 로마군이 마사다로 던진 돌 포탄이다.

 

마사다를 걸어서 올라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서쪽으로 나 있는 능선으로

로마군의 주 공격로이기도 하였다.

 

로마는 보이는 곳에 진지를 구축하고 3년 동안

마사다를 함락하기 위해 대치해야만 했다.

천하제일이라는 로마군단도 이 마사다를 함락하기 위해

3년 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는 것은 마사다가 얼마나 요새화 되어 있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북쪽에 있는 헤롯궁전으로 가는 길!

앞으로는 광야와 저 멀리 사해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궁전을 잘 지어놓았다.

 

이두메 출신인 헬롯이 유대인의 왕으로 오자

정통 유대인들은 그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살해된 자신의 아버지처럼

늘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야 했던 헤롯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이곳 마사다와 헤로디온, 마케루스에 요새를 지었다.

 

궁전은 세 개의 계단식으로 건축되었으며,

궁전에서 바라보는 유대광야와 사해의 모습은 절경이어서

헤롯의 화려한 건축물을 자랑하는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북쪽 궁전 앞에 있는 궁전모형이다.

 

이곳은 마사다의 건물 중 유명한 곳으로

로마의 목욕탕을 연상시키는 작은 건물이다.

바닥은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이런 목욕탕은 전통적으로 로마의 문화인데

이곳에서는 로마가 좋아하는 동물이나 신의 형상이 발견되지 않았고,

오히려 꽃이나 식물, 기하학적인 무늬들로 마사다 전체를 장식하고 있어

유대인의 예술적 기조를 따르는 특징이 있다.

 

외부에서 불을 지펴 뜨거운 공기로 바닥을 지피고,

벽의 파이프를 따라  뜨거운 공기가 올라가 벽까지 데피도록 고안된 목욕탕시설이다.

 

비가 많이 내리지 않은 지역에서 이곳에 내리는 모든 비를

한 방울도 흘려보내지 않고 이런 수로를 통해

모든 물이 물 저장소에 들어가도록 고안된 마사다이다.

그러니 헤롯이 물이 귀한 곳에서 목욕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헤롯을 건축의 천재라고도 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아름답게 만든 헤롯의 궁전은 정작

헤롯이 오래 머물지는 못했던 것 같다.

오히려 후대에 유대의 최후 항쟁지로 활용되어

오늘날 유대인에게 있어서는 예루살렘 다음으로 최고의 성지로 꼽히는 곳이

바로 마사다이다.

 

마사다에서 보이는 사해바다!

사해는 북쪽 갈릴리 호수의 물이 요단강에 흘러내려 모인 곳으로

더 이상 흐리지 않고 한곳에 고여 있어 바다가 아닌 호수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다.

이곳은 물 유입의 양보다 증발 양이 더 많아 염분이 매우 높아

사람이 가만히 누워있어도 저절로 뜨는 기이한 바다이다.

 

대부분 바다의 염분이 3~5%인데, 이곳은 30%가 넘으니

얼마나 짠지 물을 한 번 찍어 먹어보면 실감하게 된다.

 

사해바다 근처에 있는 일명 롯의 아내라고 불리는 소금기둥이다.

이곳은 이집트에서 국경을 통과하고 북쪽으로 달리다 보면 사해 근처에 위치하고 있어

버스에서 잠깐 내려 기념촬영을 하고 소금 덩어리 하나 챙겨서

다시 휑하니 출발하는 그런 곳 중에 한 군데 이기도 하다.

 

물론, 이것은 이스라엘에서 주장하는 롯의 아내 즉 소금기둥이지만

창세기 19장에서 말하는 소돔과 고모라 지역이 이곳인지는

아직까지 고고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없다.

 

그러나 이 지역 일대가 소돔과 고모라 사건을 연상케하는 곳이니

사실여부를 따지기보다는 창세기 19장 사건을 통해

오늘날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할 듯 하다.

Posted by 아르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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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이스라엘2019. 9. 20. 13:39

쿰란 동굴

쿰란은 2천년 전 성경의 사본들이 쓰여진 장소이며, 이 주변의 동굴에서

2천년 동안 두루마리 사본들을 보관해왔다.

1947년 처음으로 7개의 사본이 베두인 소년에 의해서 발견된 이후,

주변 11개의 동굴에서 수 만개의 이르는 사본 조각들과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이곳에서 발견된 7개의 두루마리 사본은

지금 예루살렘의 성서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쿰란에 도착하면 먼저 이곳으로 들어가서 비디오 시청을 하고

유물들을 관람할 수 있다.

 

쿰란을 다 둘러보고 나오면 바로  옆에 쇼핑매장이 있는데

이곳에서 사해소금으로 만든 비누와 로숀을 많이 산다.

지인들을 위한 선물을 준비하려면 이곳에서 사는 것이 가장 좋다.

왜냐하면 이곳에서 파는 물건은 품질이 굉장히 좋기 때문이다.

 

두리마리 사본이 보관되어 있던 항아리!!!

모형이다. 진본은 박물관으로....

 

베두인 소년(무하마드 엣 디브)이 잃어버린 염소를 찾아 다니다

혹시나 해서 동굴에 돌을 던졌는데

항아리 같은 것이 깨지는 소리가 나서 들어가 보니 하나의 항아리에서

세 개의 두루마리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즉, 이 동굴에서 이사야 전권, 공동체 규율서, 하박국 주석, 이사야의 두 번째 사본,

감사 찬송집, 전쟁 문서, 그리고 창세기 외경 두루마리 등 총 7개의 사본을 발견하였다.

 

소년은 이것들을 베들레헴 상인에게 가져가서 싼 값에 팔았고

내용물을 확인한 상인이 히브리대학의 고고학 교수 수케니에게

3개의 사본을 팔았고, 나머지 4개는 시리아 정교회 대주교 아타나시우스 사무엘에게 팔았다.

사본은 이렇게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이곳에서 발견된 이사야 사본은 그 동안 우리가 가지고 있던 가장 오래된 알레포 사본보다

무려 1,000년이나 앞서는 귀한 사본이었다.

 

이것은 쿰란 지역에 살고 있던 에세네파 공동체가

사용했다고 보는 토기들이다.

 

보이는 것은 공동체가 식탁으로 사용한 돌 식탁이다.

 

당시에 발견된 성경 사본!

현재 발견된 사본 중에 원본에 가장 가깝다.

 

이 사본은 당시 동굴 맞은편 언덕에 살고 있던 에세네파 공동체가

필사를 한 후 주후 68-70년 발발한 로마와 유대인들의 전쟁으로 인해

사본들을 근처 동굴에 숨겨놓고 피난을 갔다가 돌아오지 못하자

숨겨진 필사본들이 2000년 가까이 동굴에 보관되었던 것이다.

 

비디오 시청과 유물을 관람하면 이곳으로 나와서

실제로 성경사본이 발견된 동굴과

에세네파가 거주했다고 알려진 유적을 보러 간다.

 

쿰란은 경치가 참 좋다. 서쪽으로는 광야가 펼쳐져 있고

동쪽으로는 사해바다가 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다.

 

쿰란은 이런 동굴들이 근처에 25개 이상 있다고 한다.

 

쿰란 6호 동굴

현재까지 근처 동굴에서 발견된 사본은 972개로 알러져 있다.

 

이곳은 목욕을 하던 곳!

 

1949-1956년 드보 신부는 사해 사본이 발견된 동굴 맞은편에서

"쿰란"이라 불리는 언덕에서 유적을 발견했다.

이 유적에서는 주전 8-7세기 남왕국 유다의 흔적들도 발견되었다고 한다.

드보 신부는 발견된 쿰란 유적지가 에세네파의 거주지였다고 확신했다.

이들은 70년 전쟁시 로마를 피해 근처 동굴에 사본을 숨기고

피신했다고 보고 있다.

 

침례요한도 한 때 이곳에 있었다는 학자들도 있다.

 

식당!

 

저장실!

 

유적지의 크기로 봐서 150-200명 정도가 공동체로

있었다고 보여진다.

 

동쪽으로 보이는 사해바다!

 

유적지 맞은편 쿰란 4호 동굴

이곳에서 발견된 사본의 40%는 에스더를 제외한 모든

성경을 포함하고 있다.

사본은 대부분 히브리어로 기록되었으며 아람어와 헬라어 기록도 있다.

또한, 파피루스에 쓰여진 문서도 있었으나 많은 양의 사본이

양피지에 쓰여 있었다.

 

이곳에 사본을 숨긴 사람들을 에세네파라고 주장하는데

그 근거로는 이 4호 동굴에서 발견된 4QMMT 문서에 기록된

정결례의 율법과 축제 달력이 사두개 종파의 것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곳은 여리고 지역에 위치한 엘리사의 샘 입구이다.

길을 건너면 여리고 성터이며,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면 시험산에 오를 수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정원이 깔끔하게 반겨준다.

 

에인 에스 술탄이라 불리운다.

이곳이 바로 열왕기하 2장에 배경이 되는 곳이다.

 

엘리사가 이곳에 방문하였을 때 성안의 사람들이 물이 좋지 않다는 말에

물 근원에 소금을 뿌려 수질을 좋게 했다는 샘으로

지금도 이 샘에는 물이 흐르고 있다.

 

대부분 건물 외부에서 기념사진만 찍고 돌아가는데

가이드에게 말을 해서 내부로 들어가면

샘이 솟아 흐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물은 해발 -1300피트 아래서 솟아나는 샘물로

BC 8000년 전부터 흘러나오고 있다고 한다.

 

여리고는 이러한 샘물이 많이 있기에

오래전부터 도시가 형성되었고,

풍요로운 휴양도시로 유명하였다.

 

엘리사 샘을 나오면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는 시험산이 나온다.

 

여리고는 현재 해수면 아래 258m에 위치해 있다.

가나안 정복 당시 요셉의 자손에게 할당된 땅이었다.

 

"여리고"라는 이름은 여러 유래가 있는데 그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달을 의미하는 "야레아흐"와 관련이 있고,

달 신을 섬기는 중심지가 이곳이여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고 본다.

 

민수기 13장에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그 땅에 과일을 따다가 백성에게 보이고

그곳은 풍성하다고 보고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여리고는 과일이 풍성한 지역이므로

혹시 이곳에서 이런 과일을 따 온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여리고를 방문하여도 시험산을 조망하는 코스로 오면

이곳은 그냥 지나치지만 시험산을 올라가는 여정으로 잡으면

받으시 이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야 됩니다.

물론 걸어서도 갈 수 있지만, 시간과 체력이 엄청나게 필요하답니다.

 

한 7-8명 정도 탈 수 있는 케이블 카 같은데

바닥이 보이니 약간 무서울 수도 있답니다.

 

케이블 카를 타고 올라가다보면

여리고 유적지를 볼 수 있답니다.

 

여리고는 강우량이 일 년에 160mm 밖에 안되지만,

보이는 것처럼 샘들이 많아서 나무와 풀들이 무성하게 자랄 수 있다.

 

이런 샘들이 많은 여리고는

이미 주전 9000년경부터 인류가 살고 있었던 흔적이 발견되었으며,

이후 20개 이상 거주지로 사용된 층들이 발견되었다.

 

여리고 시험산에 오르면 저 멀리 보이는 그리스 정교회의 수도원이 보인다.

 

이곳은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갔다 올 수 있다.

가는데 한 10분 이상 걸리는 것 같다.

 

시험산에 오르면 저 멀이 여리고가 한 눈에 보인다.

 

마태복음 4장에 보면,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중 8절에 보면 마귀가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 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면서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주겠다다고 시험한다.

바로 그 배경이 되는 곳이 여리고 시험산이다.

 

물론, 지금은 유다가 멸망한 이후 오래도록 폐허가 되었다가

많은 문명들이 들어서면서 흥망성쇠의 길을 걸어왔다.

그러다 주후 70년 로마가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이후 여리고는

더 이상 중요한 도시가 되지 못해 발달하지 못하였으나

한 때 많은 문명들이 이곳을 개발하고 도시를 세웠던

찬란한 문명의 발생지가 바로 여리고였다.

 

그렇기에 마귀는 이곳으로 예수님을 데리고 와서 천하만국이라 칭하며

자신에게 경배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곳은 삭개오 뽕나무라는 곳으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다가 들르신 곳인데,

예수의 소문을 듣고 세금 징수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올라갔다고 하는 나무이다.

 

이 나무가 실제로 삭개오가 올라간 뽕나무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삼거리에 자리잡고 있는 나무를 보면

2000년 전 예수님이 이곳을 지나가시다가

어느 한 나무 위에 올라가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한 사람의 모습이 떠오른다.

 

옛날 성경에는 삭개오가 올라간 나무를 뽕나무로 번역해 놓았다.

그러나 개역개정판에는 돌무화과 나무로 다시 번역을 했다.

그것은 원래 히브리어로 "쉬크마" 라는 단어를 잘못 번역하여 뽕나무로 해석했던 같다.

그러나 지금은 원어에 충실하게 돌 무화과 나무라고 번역을 했다.

 

사진을 자세히 봐도 무화과 열매를 많이 닮았다.

Posted by 아르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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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이스라엘2019. 9. 16. 15:57

야르데니트 - 침례터

초기 이스라엘 이민자들은 갈릴리 주변에 키부츠를 만들고 정착하였다.

그러다 요단강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약 100m 되는 지역에 수문을 만들고

순례자들을 위하여 침례를 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었다.

 

오늘날 그곳을 "야르데니트"라 부르게 되었다.

 

야르데니트 들어가는 입구!!!!

옆에는 말씀이 전시되어 있다.

 

상도중앙교회에서 마가복음 1장 9~11절 말씀을 장식해놓았네요

 

이곳은 정원처럼 잘 꾸며 놓았다.

아침에 일찍가면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묵상하기에 좋다.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침례를 받는다.

실제로 이스라엘에 와서 침례를 받는다는 것은

또다른 감격이 있을것 같다.

그러나 침례는 일생애 한 번으로.......

 

동남아 국가에서 오신 분들인데 침례를 받기 위해 오신 크리스천들이다.

성경의 땅! 이스라엘에서 침례를 받는 그 감격이 남다를 것 같다.

 

아르벨산 국립공원

갈릴리 바다를 한 눈에 보려면 아르벨산 전망대에 올라야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패키지로 오신 분들은 일정상 이곳에 방문하기가 싶지는 않다.

하지만, 갈릴리 지역을 방문한다면 이곳을 꼭 추천하고 싶다.

 

아르벨 국립공원은 BC 759년에 지진으로 갈라지면서 생긴 절벽이다.

버스에서 내려 정상까지는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그다지 가파르지 않기에 누구가 걸어서 쉽게 올라간다.

 

이 절벽은 동굴들이 많이 있는게 특징인데,

특별히 헤롯 왕과 관련이 깊은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즉 요세푸스에 의하면 로마에 대항했던 유대인들이 이 동굴에 들어와 숨어 살았다.

그러나 헤롯은 이 동굴에 숨어사는 유대인들을 진압하고자 사진에 보이는

커다란 바구니를 만들어서 병사들을 담아 동굴로 내려 보내

유대인들을 떨어뜨려 죽였다고 한다.

 

전망대에 오르면 갈릴리 바다와

티베리아, 가버나움, 팔복산, 골란고원, 헤르몬산 봉우리까지 볼 수 있다.

 

절벽에 올라서 아래를 내려보면

유대인들이 왜 이곳에 숨어 살았는지 알 수 있다.

 

계곡 아래로 보이는 마을은 "비둘기들의 계곡"이라고 부르는

베두인 마을 "와디 하맘"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갈릴리 바다!

예수님이 사역하시고 물위를 걸으셨다는 성경이 말하는

역사적 장소가 한 눈에 보이는 이곳에 올라

2000년 전 그 분의 사역을 묵상해 본다.

 

다볼산 - 변화산

이스르엘 평원에서 북동쪽으로 대접을 엎어 놓은 것처럼 솟아 있는 산이 하나 있다.

폭이 400m이고, 길이가 1,200m 정도 되며,

갈릴리 호수 면에서 약 774m 정도의 높이로 솟아 있는 산이 다볼산이다.

 

다볼은 여호수아 정복 전쟁 후 잇사갈과 스불론지파 사이에 있었다.

하솔 왕 야빈과 드보라 선지자와 전쟁이 벌어졌을 때 바락이 1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이 산으로 와서 군대를 정비한 후 대승을 거둔 장소이다(삿 4장)

 

현재는 대형버스가 교회 앞까지 올라갈 수 없기에

소형차로 갈아타고 올라가야 한다.

 

올라가면서 보이는 이스르엘 평원은 장관이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 그리고 주변에 강대국들과

전쟁을 벌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이곳에 와보면 알 수 있다.

 

다볼산은 시내산 그리고 그리심산과 더불어 거룩한 산으로 여겨져 고대부터

많은 속죄 제사가 이루어졌던 곳이다.

그래서 비잔틴 시대에는 제롬과 유세비우스가 주께서 변모하셨다는

마태복음 17장의 장소로 언급되기도 하였다.

 

이곳은 AD 326년에 헬레나에 의해 변화성당이 세워졌다.

오늘날 다볼산은 변화산으로 불리며 많은 순례객들이 찾아오고 있다.

 

입구에 보면 왼쪽에는 모세를 기념하는 곳이고,

오른쪽은 엘리야를 기념하는 곳이다.

 

왼쪽에 모세를 기념하는 재단!

 

교회 내부는 변화사건의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해 놓았다.

 

베다니(요단강) 침례터 가는 길

이곳은 야르데니트와 더불어 요단강 침례터로 유명한 요단강(베다니) 침례터이다.

요단강을 경계로 요르단이 보인다.

즉 요단강 이쪽은 이스라엘이고, 요단강 저쪽은 요르단이다.

 

이곳은 길 양쪽으로 지뢰가 있기 때문에 각별히 조심해야 될 곳이다.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경계가 오로지 요단강 밖에 없다

어떠한 철조망도 없다.

그냥 요단강을 걸어서 가면 요르단이다.

'

보이는 교회는 요르단에 위치한 그리스 정교회 "침례요한 교회"이다. 

 

요단강을 사이에 두고 이스라엘과 요르단이 마주하고 있네요

물이 더러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황토물이라 그런거지

오염된 건 아니랍니다.

 

물속은 그냥 진흙 벌이라 맨발로 들어가도 괜찮아요.

여기까지 왔다면 한번 신발벗고 들어가서

인증샷 남기는 것도......

 

위에서 설명한 야르데니트와 베다니 침례터는

예수님이 침례요한에게 침례받았던 장소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어디가 예수님의 침례터로 정확한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2000년 전 이 요단강에서 성경에 역사가

실제로 일어났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겠지요.

Posted by 아르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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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이스라엘2019. 9. 10. 15:02

타브가 박물관

1986년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갈릴리 호수의 수면이 내려가자

모세루판과 유발 루판 형제가 갈릴리를 탐사하던 중 예수님 당시 배로 추정되는

유물을 발견하여 이곳에 전시해 놓았다.

 

이 배는 진흙속에 묻혀 있어서 오랫동안 보존이 가능했다.

그러나 진흙을 파내면 태양과 자연바람으로 인해 금방 훼손이 일어나기에

지금 보이는 것처럼 왁스로 전체 구조물을 덮어씌운 다음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작업을 해서 구조물을 건졌으며, 그 후 7년 동안 화학적 치료를 거친다음

지금의 박물관에 전시해 놓았다.

 

배의 길이는 8.27m이며, 너비 2.3m, 높이 1.3m로

배의 아랫부분만 보존되어 있다.

 

나무 재질은 백향목이며,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결과 주전 40년에서 50년 쯤까지

사용되었던 것으로 판명되어 예수님 당시 사용되었던 배로

보여진다.

 

현재 이스라엘에 가서 갈릴리 선상예배를 드릴때 타는 배가

바로 이 배의 형상을 본떠서 만든 배이다.

 

타브가 박물관을 나와서 조금만 걸어가면 선착장이 나온다.

이곳으로 가서 배 한척을 타고 1시간 가량

갈릴리 투어를 한다.

 

배 안에는 이렇게 의자가 놓인 배도 있고, 의자없이 양쪽으로 걸터 앉아서

간단하게 예배를 드린다.

 

배를타고 간단한 국기 계양식도 해봅니다.

먼나라 이스라엘에서 국기 계양식을 하니 감회가 새롭네요.

 

간단하게 예배를 드리고 기념사진도 촬영해 봅니다.

 

갈릴리는 분명 호수인데 왜 성경은 바다라고 표현하는지

현장에 와서 보니 알 것 같습니다.

호수에서 바라볼 때 지평선이 보이네요.

 

점심은 갈릴리 근처 식당에서 베드로 고기를 먹네요.

한 마리를 통째로 튀겨서 주는데

웬지 살아있는 느낌이 나서 선득 젓가락이 못가네요. ㅎㅎ

갈릴이 호수에서 티베리아로 이동하다 보면

가는 길에 "타브가"라는 오병이어 기념교회를 만나게 된다.

우리에게는 마 14:13~21을 통해 물고기 2마리와 보리떡 5개로

5000명을 먹이신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다.

 

교회안에 들어가면 정원이 있는데 각종 장신구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중에 보이는 것이 맷돌이다.

 

이것은 침례탕으로 비잔틴시대 사용되었다.

침례를 받으러 안으로 들어가면 무릎까지 물에 잠기게 되고

이때 집례자가 머리에 물을 붓도록 고안된 형태이다.

이것은 완전히 물에 잠겨서 침례를 받던 초기 침례형태에서

점점 머리에 물을 뿌리는 세례로 바뀌어가는 비잔틴 시대의 침례 형식을 보여준다.

 

교회 내부는 비교적 넓고 천정도 높은 편이다.

 

강대상 밑으로 보이는 바위가 바로 예수님이 앉아서

물고기 2마리와 보리떡 5개로 떡을 떼어서 주었다는 장소이다.

 

이 기념교회는 초기 비잔틴 시대 세워졌다가

지진으로 인해 무너졌는데, 그 터 위에 다시 주후 5세기 경 지금의 교회를 세웠다.

그 때 교회 바닥에 모자이크로 장식을 하였는데,

그 장식이 지금 보이는 바닥이며, 가장 백미가 물고기 2마리와 보리떡 5개가

그려져 있는 모자이크 그림이다.

 

현재 오병이어 기념교회는 1982년 새롭게 세워진 건물이다.

 

여기서 질문????

성경에는 분명이 보리떡 5개인 데 모자이크 그림은 아무리 봐도 보리떡 4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1개는 어디로 간 것인가????

해답은 성지순례가서 찾아보세요.

 

베드로 수위권 교회 입구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21:1절 말씀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예수를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고향으로 도망치듯 와서

고기를 잡던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세 번 물으신 곳!!!

그 질문에 그렇다고 답변한 베드로에게

"내 양을 치고", "내양을 먹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다시 회복된 베드로!!!

 

이곳은 히브리어로 "에인 쉐바" 즉 7개의 샘이라는 뜻인데,

헬라어로는 "헵타페곤"이라고 불렸다.

이 말은 해안가 근처에 7개의 따뜻한 물이 솟는 샘이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교회 안에 들어가면 이렇게 샘물이 흐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샘이 아래 갈릴리 호수로 흘러 들어간다.

 

원래 따뜻한 물이 있는 곳에는 플랑크톤이 풍부해서 물고기들이

많이 몰려들었그에 그물 던지기에 최적의 장소로 어부들은 알고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잡은 고기로 조반을 준비해서 함께 앉아서 먹었다는 바위!

베드로 수위권 교회는 그 바위 위에 지었다.

 

바위에 앉아 있으면 해안가 근처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들이 잘 보일것 같다.

주님도 이곳에서 제자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을 것 같다.

 

마당에 보이는 하트 모양은 12 제자들을기념하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교회 내부에 있는 바위

이 바위가 바로 예수님과 제자들이 앉아서 조반을 먹었다는 곳이다.

 

교회 옆으로 보면 이런 동상이 보인다.

 

비록 주님을 세 번 부인했으나 그런 베드로를 다시 찾아오셔서

죄책감을 덜게 해주시고, 용서하심과 더불어

새로운 사명을 주시는 그 분의 음성으로 인해

오늘도 우리는 죄를 이기고 다시한번 주님이 주시는 새로운 비젼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날 우연히 이곳에서 고기를 잡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실제로 이곳에서 고기가 많이 잡힌다고 한다.

 

베드로의 집터와 교회

가버나움은 예수께서 공생애 3년 동안 이곳을 중심으로 활동하셨던 곳이다.

이곳에서 주님은 수 많은 기적을 일으키셨고 복음을 전하셨다.

마 4:13, 막 1:32

 

지금 보이는 곳은 베드로의 집터로 추정되고 있는데

그곳 위에 교회를 세웠다.

교회 바닥은 일부가 유리로 되어 있어서 터가 잘 보이게 되어 있다.

 

교회 아래는 주전 1세기 지어진 집과 주후 4~5세기에

교회가 세워진 층이 발견되었다.

또한, 이곳에서 비문이 131개가 발견되었는데

헬라어와 아람어, 고전 시리아어와 라틴어로 쓰였다.

비문에는 예수의 이름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주님, 가장 높으신 하나님

등이 언급되어 있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있는 동안에 베드로의 집에 머물렀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주후 4세기 경 지어진 회당

교회 옆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가버나움의 회당이 보인다.

 

사진에서 보듯이 회당은 기초석과 색깔이 다르다.

이것은 원래 현무암으로 지어졌던 것이 무너지자 다시 석회석으로 지었기에

이렇게 층이 생기게 된 것이다.

이 석회석은 근처에서 나지 않기에 먼 곳에서 비싸게 공수해 와서

이곳에 회당을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흰색의 회당은 예수님 당시 회당이 아니라 주후 4~5세기 때 것으로 추정하며

실제로 예수님 당시 회당은 밑에 검은색으로 지어진 건물로 추정한다.

 

회당 내부는 비잔틴 시대의 특징인 바실리카 양식을 따르고 있다.

 

마 4:23~5:12

산상수훈의 배경이 되는 곳에 팔복교회를 세웠다.

고침을 받기 위해 갈릴리, 데가볼리, 저 멀리 예루살렘에서부터 예수님을 찾아온 이들에게

진정한 복이 무엇인지를 갈릴리 바닷가 언덕에서 설파하셨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복은 병 고침도, 출세도, 세력이나 물질을 얻는 것이 아닌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것임을

팔복 기념교회 앞에서 조용히 묵상해 보기 원한다.

 

교회내부는 비교적 아담한 크기다

천정은 8복을 상징하여 팔각형구조로 되어 있다.

상층부에 라틴어로 마 5장에 나오는 8복에 대해 써 놓았다.

 

교회 외부는 작은 정원처럼 잘 꾸며놓았다.

바닷가를 상징하는 물고기 모자이크도 보이고

갈릴리 바다도 한 눈에 들어오는 경치 좋은 곳에 팔복교회가 자리하고 있다.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자연바람을 마이크 삼아

모인 무리들에게 진정한 복이 무엇인지 가르치셨던 주님의 말씀을 묵상해 본다.

Posted by 아르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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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이스라엘2019. 9. 8. 16:19

반탈 전망대에서 바라본 헬몬산

갈릴리 호수 북동쪽으로 가면 골란고원을 볼 수 있다.

이곳은 1967년 6월 5일 발생한 6일 전쟁으로(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연합군을 물리친 전쟁) 

이스라엘이 시리아가 소유했던 곳을 빼앗은 곳이다.

 

지대가 높아서 이스라엘이나 시리아 입장에서는 서로 차지하려는

분쟁지역이기에 현재는 UN이 주둔하고 있으며,

이스라엘도 정예부대를 이곳에 배치해 놓고 있다.

 

 

전망대에 올라가면 북쪽으로는 헬몬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헬몬산은 아직까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그곳을 가려면 하루 일정을 잡아야 하기에 쉽게 성지순례 코스로

넣기가 쉽지않다. 다음에 이스라엘을 가면 꼭

방문해보고 싶은 곳이다. 

 

현재 이스라엘은 골란고원 문제로 인해 시리아와 적대국으로

서로 총을 겨누고 있는 상황이다.

 

바울이 다메섹으로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러

갔다가 변화를 경험했던 곳이지만,

지금은 종교적 갈등과 땅 문제로 인해 타협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운 관계에 놓여 있다.

반탈 전망대를 가면 이런 긴장 관계를 간접적으로 느껴 볼 수 있다.

 

민수기 21:32-35에 보면, 바산 왕옥이 이스라엘과의 싸움에서

대패한 곳으로 나오는 곳이 바로 골란고원이다.

 

골란 고원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바니야스"라고 부르는

가이사랴 빌리보가 나온다.

이스라엘의 3대 물의 근원 중에 한 곳으로

보이는 것처럼 바위 아래에서 물이 솟아나는 특이한 곳이다.

 

가이사랴 빌립보라는 이름은 

당시 로마 황제 가이사랴와 유대 분봉왕 헤롯 빌립보의

이름이 결합하여 생긴 것이다.

 

들어가는 입구에는 헬라시대 터를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은 물이 귀한 곳이다. 특히 남쪽으로 가면

물이 부족해서 농사 짓기도 쉽지 않았지만,

북쪽으로 가면 헬몬산에서 녹은 물이 흘러 흘러

텔단,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물이 솟아 나오기에

이곳에는 물이 풍족하다.

 

목양의 신인 판신을 위해 만든 제단

이스라엘이 헬라문화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것 중에 하나가 이방신들이다.

그것은 헬라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와서 신전을 짓고 신들을 숭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대인들과 늘 긴장과 충돌이 심했다.

기독교 역시 이런 헬라 문화로 인해 수 많은 핍박과 순교를

당해야 했다.

 

가이사랴 빌립보는 빌립보 분봉왕의 수도 역할을 했던 곳으로

목양의 신 판신을 위해 지어진 곳으로

백성들 사이에서 우상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던 곳이다.

 

이곳에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을 데리고 와서

예수가 누구인지를 물었던 장소이다.

 

그 물음에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아들이시니이다" 마 16장 16절

라고 고백하므로 주님께 크게 칭찬 받았던 장소이다.

 

주님은 빌립보 사람들이 가장 큰 신으로 섬겼던 "판 신" 제단 앞에서

그의 제자들에게 참신이 누구인지를 보여주시려고 했던 것이다.

 

그 마음을 정확하게 읽은 베드로는 위대한 신앙고백을 하게 되었고,

오늘날 우리에게 그 고백위에 교회가 세워져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은 제우스 신전이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바니야스 폭포에 도착해보니

가게 앞에서 귤을 판다.

순례객 인원이 많다보니 한 박스 사서 나누어 먹었는데

정말 귤이 달다.

 

바니야스 폭포는 이정표대로 따라 걸어가면 약 20분 정도 걸린다.

근데 이 길은 내려갔다가 다시 폭포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길이라 쉽지는 않다.

만약, 일행 중에 걷는 것이 불편하거나, 시간을 줄이려면

화살표 방향 반대로 내려가면 금방 폭포에 도착 할 수 있다.

 

헬몬산의 눈이 녹아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솟아나와 흐르는 물이

이렇게 폭포를 만들고 그 물이 흘러 흘러 

대지를 적시는 요단강을 이루내요.

 

이곳은 시아르 폭포라는 곳인데,

사람들이 성지순례를 갔다오면 바니야스 폭포가

이스라엘에서는 유일한 폭포라고 하는데,

시아르 폭포가 있다는 것을 소개하기 위해 올려봅니다.

 

그리고 엔게디에 가면 다윗의 폭포가 또 있답니다.

 

텔단은 가이사랴 빌립보 그리고 스닐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삼대 유원지 중에 하나인데

그 중 가장 큰 유원지가 바로 텔단이다.

 

원래 단지파는 가나안 정복 당시 블레셋 평야 부분을 할당 받았으나,

블레셋 민족에게 밀려 결국 북쪽으로 150Km 떨어진

당시 라이스(레셈)라고 불렸던 이 지역을 점령하고, 이름을 "단"이라고 하였다.

(여호수아 19:40~48)

 

텔단은 여러 코스로 나누어져 있어서 가이드 분과 상의해서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 일정상 30분 정도 숲속을 걷는 코스로 진행한다.

 

이스라엘 유원지 중에 물이 가장 많은 곳으로

가까이서 보면 물이 콸콸콸 솟아져 나오는 것이 보인다.

물론, 한국 사람들은 이 정도를 보고 물이 많다고 하지는 않겠지만,

이스라엘이라는 특수한 지역적 상황을 알게되면,

이것이 풍부한 수자원이라는 사실을 알게된다.

 

 

숲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이런 물 웅덩이들을 만나게 된다.

여유가 있으면 발도 담가보고 손도 씻어 보고 싶은데

단체로 순례를 가면 앞 사람 따라가기가 바쁘다....

 

숲 길을 나오면 텔 단 성벽에 이르게 된다.

물론 숲 길을 들어가지 않으면 이곳으로 바로 갈 수도 있다.

 

보이는 성벽은 북이스라엘 시대 아합에 의해 세워진 성벽이다.

사진에서 보면 알겠지만, 텔 단 성문 입구에 포장도로가 잘 나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성문 입구 오른쪽으로 작은 단이 보인다.

엘리제사장이 전쟁에서 패하고 법궤를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고

넘어져 목이 부러졌다는 대목이 있는데

바로 이곳에 앉아 있다 소식을 듣고 넘어져 죽은 것이다.

현장에 가서 그 이야기를 들으면 금방 이해가 될 것이다.

구약에는 임금이나 재판장들이 이곳에 앉아서 백성들의 억울함을 듣고

공평한 재판을 해주었다.

 

단 옆으로 보이는 꽃잎 문양은 시리아 문양이다.

북쪽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시리아의 영향을 받은 사실을 알게 해준다.

 

성 입구 옆으로 보면 돌로 단을 쌓아 놓은 주상이 보인다.

이것은 당시 백성들이 가나안 우상을 버젓이 섬겼다는 것을 보여준다.

 

텔 단은 이러한 주상을 성 안에서 두 번더 마주치게 되어있다.

즉 그들은 일상 생활속에서 우상을 가까이 섬기고

성을 왔다 갔다하면서 늘 우상에게 절을 하며 살았던 것이다.

 

텔 단은 성문을 통과하면서 세 번의 주상을 만나고

약 300m 정도 걸어 들어가면 이렇게 금송아지를 섬기는 신전을 만나게 된다.

솔로몬 이후 분열된 왕국은 여로보암이 다스리는 북왕국 입장에서

백성들이 늘 남쪽에 있는 예루살렘 성전으로 봉헌을 하러 가니

그 마음이 자신에게서 남유다 왕에게로 갈까봐 여로보암은

북쪽 지역의 두 경계지역인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재단을 만들고

이집트에서 우리를 구원한 신이라고 속이고 우상숭배를 강요하였다.

 

여로보암의 금송아지 숭배사상은 그 당시 가나안 족속들이

동물의 형상을 가지고 우상을 섬겼기에

금송아지 숭배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여로보암 이후 북이스라엘은 모든 왕들이 이 우상제단을 파괴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리 정치를 잘하고 북왕국을 부유하게 한 왕이라도

성경은 단 한 사람도 북왕국 왕들을 선하게 평가하지 않는다.

 

이러한 종교적 타락은 결국 주전 732년 앗수르에 의해서 완전히 파괴되었고

단의 비옥한 땅은 주전 4세기까지 아무도 살지 않는 버려진 땅이 되었다.

 

텔단에 가면 대부분 성지순례 객들이 이곳을 방문하지 않고 그냥 가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곳은 가이드님한테 꼭 부탁해서 살펴보고 오면 좋다.

그것은 이 성문이 주전 2000~1800년 경 세워진 레겜/라이스의 도시 성문이기 때문이다.

이 성문은 같은 시대 므깃도, 세겜, 게셀 같은 곳에서 유사한 형태로 발견되는 정형적인 "시리아"

형식의 성문으로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에 가장 보존이 잘 된 형태이다.

 

이 성문이 사용된 연대가 아브라함 시대와 유사해 성문은 "아브라함 성문"이라고 불리고 있다.

즉 실제로 아브라함이 하란을 거쳐 이곳을 통과해서 지나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 성벽을 재현한 모형도이다.

 

텔 단을 세 번 방문하였지만, 이곳이 있는 줄을 이번에 알았다.

그래서 성지순례는 한 번 이상 가봐야 되는 것 같다.

 

이곳에서 4000년 전 아브라함이 지나갔다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믿음의 여정을 다시한번 묵상하게 된다.

Posted by 아르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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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이스라엘2019. 9. 5. 11:13

마리아 수태고지 교회

마리아 수태고지 교회는 나사렛이라는 동네에 위치해 있다.

나사렛에 있던 마리아는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예수님의 탄생을 듣게 된다.

이를 기념하여 세운 교회가 마리아 수태고지 교회다.

 

오늘날 나사렛에는 기독교인, 회교도인, 유대인이 섞여 살고 있다.

특히, 아랍인들 중에 기독교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 중에 한 곳이다.

 

 

므깃도에도 북동쪽으로 약 20분 정도 달리면 나사렛이라는 동네가 나온다.

 

 

마리아 수태고지 교회는 나사렛 동네 한복판에 우뚝 서있다.

로마 가톨릭은 나사렛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다

이탈리아 건축가 지오바니 무치오가 설계해서 기념교회를 세웠다.

 

물론 이곳이 역사적 고증을 통해 증명된 장소는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지순례는

고고학적 증거를 찾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에서 일어난 성경의 말씀을 통해

현장에서 다시한번 생생한 감동을 전해 듣기 위해 가는 것이다.

 

교회 2층에서 바라본 전시물들

수태고지 교회의 특징은 각 나라에서 예수님과 마리아에 대한

이미지를 모자이크로 만들어서 보낸 작품들을

교회 곳곳에 전시해 놓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가톨릭에서 한복을 입은 예수님과 마리아의 모습을

모자이크해서 전시해 놓았다.

성지순례객들은 이곳에서 무조건 기념사진 촬영을 한다는!!!!

 

 1층으로 들어가보니 미사가 진행중에 있네요

 

보이는 동굴이 마리아가 수태고지를 받았다는 장소이다.

이곳이 유일하게 지금까지 파괴되지 않은 장소라고 한다.

 

2층은 예배할 수 있는 곳인데 굉장히 넓어요.

벽면 곳곳에는 성경에 이야기를

성화로 묘사해 놓았네요.

 

교회 천정은 백합화 형상을 하고 있어 아름답네요.

이 문양은 마리아를 상징한다고 하네요.

 

수태고지 교회에서 요셉 기념교회로 넘어가다 보면

초대교회 당시 집터가 보인다.

 

마리아 수태고지 교회 옆에는 바로 요셉 기념교회가 있다.

요셉이 목수 생활을 하던 집터 위에 세워진 교회이다.

이곳에서 요셉은 마리아와 결혼해서 예수님과 같이

살았던 장소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교회 내부 모습입니다.

 

전승에 의하면 예수님의 공생애 바로 직전에

요셉이 임종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지하에 내려가면 비잔틴 시대 지하 예배소와

곡식창고, 물 탱크 등이 있다.

 

성 요셉 교회는 마리아 수태고지 교회보다 규모 면에서는 굉장히 작다

또한, 예수님의 아버지인 요셉은 성경에 많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아버지로써 성품이 온유하고

신앙심이 있기에 초자연적인 현상을 믿음으로

잘 받아들이고 어린 예수님이

나사렛에서 잘 자랄 수 있도록 사명을 잘 감당하였기에

그의 흔적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나사렛에서 북서쪽으로 4Km 떨어져 있는 곳에

찌포리라는 헬라화된 로마 도시를 볼 수 있다.

 

찌포리에서 가까이 살고 있던 목수 요셉은 이곳에서

목수 일을 했을 것이라 학자들은 생각했고,

예수님도 어린시절 아버지를 따라

이곳에 와서 놀았을 가능성이 많다고 보고 있다.

 

찌포리는 주전 7세기 앗수르가 북왕국을 점령하고

도시를 세웠으며, 헬라 시대까지 북부 지역의 주요 행정 도시의 역할을 하였다.

 

하스모니 왕조가 이곳을 다스렸다가 헤롯에 의해 정복당했다.

그러나 헤롯이 죽자 반란을 일으켰다가

로마에 의해 도시는 전멸했으며 거주민들은 노예로 팔려갔다.

 

후에 헤롯 안티파스가 도시를 재건하였으며,

주후 66~70년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이 정복당할 때 찌포리는

로마에 그 어떠한 저항도 하지 않아 파괴되지는 않았다.

 

찌포리는 주후 363년 갈릴리 지역의 지진으로 인해 잠시 파괴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갈릴리의 중심지로서 유대인과 로마인 심지어

기독교인까지 평화롭게 함께 어울려 사는 도시가 되었다.

 

찌포리가 헬라화된 도시로 상당히 부유했다는 증거가

일반 가정집 바닥에서 모자이크 양식들이 발견된다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또한, 모자이크 양식을 보면 유대교가 점점 헬라에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찌포리는 주후 70년 로마의 예루살렘 정복 과정과

 주후 132년 바르 코크바 혁명 당시에 전쟁에 가담하지 않았고

전쟁과 혁명에 실패한 유대인들이 대거 찌포리로 몰려들면서

이곳은 갈릴리 유대인들의 신앙의 중심지로 서서히 탈바꿈 하였다.

 

극장으로 좌석이 약 4500개 정도 되는 곳이다.

 

찌포리는 갈릴리 유대인들의 신앙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헬라 문명을 받아들이면서 생활은 풍족하였으나

종교적 색깔은 점점 헬라에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기독교의 세력이 점차 커지면서 유대교의 위상은 점점 작아졌고

회당 역시 도시 언저리로 밀려나게 되었다.

 

나사렛에서 북동쪽으로 6Km 지점에 "가나" 라는 마을이 나온다

요한복음 2장에 나오는 가나 혼인잔치 사건의 배경이 되는 곳이기에

순례객들은 이곳을 꼭 방문한다.

 

물론, 현재 우리가 방문하는 "카파르 가나" 보다는

나사렛에서 약 13Km 떨어진 "키르벳 가나"가 원래 성경의 역사가 있었던 장소로 유력하나,

순례객들의 안전을 고려해서 이곳에 교회를 세우고 가나 혼인잔치 교회로

명하고 있다.

 

예수님이 첫 이적을 보이신 가나 혼인잔치 교회!

요한복음 2장

 

내부는 아담한 크기의 예배 장소가 있다.

이곳에서 지하로 내려가면

돌항아리가 나온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다는 예수님 당시 돌항아리!

서로 사진 찍으려고 인기가 많다

 

예수님은 포도주 사건을 통해

우주 만물의 주권이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나다나엘 기념교회

가나 기념교회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나오는 나다나엘 기념교회

예수님의 제자이자 빌립의 친구로 가나가 고향이다.

빌립에 의해 예수님을 소개받았으나,

예수가 나사렛 출신이라 말하자

나사렛에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 하고 회의적이었던 사람이다.

 

그것은 가나라는 지역 자체가 유대여인들과 로마인들 사이에

혼열인들이 대부분이라 정통 유대인들은 갈릴리

사람들을 천시하였기 때문이다.

 

나다나엘 기념교회 묘지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어 밖에서 기념사진 한장!!!

묘지는 작은 정원으로 조성되어 있네요.

 

본인이 나사렛 출신이라 오히려 예수님을 신뢰하지 못했던 나다나엘

그러나 만남을 통해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깨닫고

주의 제자가 된 나다나엘(바돌로매)

 

사회적 편견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나다나엘은

주님을 만나고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지고

사람들을 진리로 인도하는 귀한 삶을 살게 된다.

Posted by 아르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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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이스라엘2019. 9. 4. 10:21

갈멜산은 열왕기상 18장의 배경이 되는 곳으로

우리에게는 굉장히 익숙한 지명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곳은 갈멜산이라 불리기보다 무크라카(Muhraga)로 불린다.

즉 "불이 내려온 곳" 이라는 뜻이다.

 

가이사랴에서 해변길을 따라 북쪽으로 달리다 보면

남으로는 샤론평야,

북으로는 이스르엘 평원 사이에

우뚝 솟아 있는 곳에 위치해 있다.

 

 

갈멜산 입구
갈멜산 수도원

 

수도원 입구로 들어가면

올리브 나무로 만든 십자가나 여러 종류의 기념품을 판다.

난 이곳에서 늘 나무 십자가를 사곤한다.

 

그리고 2층으로 올라가면 전망대가 나오는데

날씨가 좋으면 저 멀리 지중해도 보인다.

 

 

화살표 방향으로 가면 나오는 곳을

지명으로 표기해 놓았네요.

2시 방향에 바다라는 표시가 지중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보이는 곳이 이스르엘 평야입니다.

이스라엘의 최대 곡창지대랍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전쟁도 많이 났고,

많은 사람들이 피흘렸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봉우리는

왼쪽이 다볼산, 중앙이 모레산, 오른쪽이 길보아산이다.

 

 

아래를 보면 정확한 지점을 찾기는 어렵지만

엘리야 당시 이곳에 기손강이 흘러갔던 시내가 있답니다.

엘리야는 아합 왕 당시 산 정상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와 대결에서 승리 후

저 아래 기손 시내에서 바알의 선지자들을 죽였다.

 

 

정상에서 서쪽으로 바라보면 지중해가 보이는데

바로 저 곳에서 엘리야가 이방 제사장들과 대치할 때

구름 한 조각이 떠올라 이곳에 비를 내리게 했던 것이다.

 

갈멜산은 비가 많이 오고 물이 많으며

넓은 평야가 형성돼 있어 예로부터 풍요로운 곳이다.

특히, 아합 시대는 이스라엘이 크게 번영을 이룩한 시대였는데

오히려 백성들은 영적으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를 섬기며

극도로 타락했던 시기였다.

 

그러나 엘리야 선지자는 갈멜산 꼭대기에서

홀로 영적 싸움을 통해 참신이 누구인지를 백성들에게 가르쳤으며,

종교개혁을 이끌었던 그 시대에 참 선지자였다.

 

갈멜산에서 므깃도로 이동하다 우연히 보게 된 동굴

왼쪽에 원형으로 된 돌을 오른쪽으로 굴리면

입구가 막아지게 되어 있다.

예수님 정원무덤에 가면 이보다 큰 무덤을 볼 수 있다.

 

므깃도 입구

므깃도는 동쪽 내륙으로 갈 수 있는 와디 아라의 길목에 위치해 있으며
남쪽 이집트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는 해변길이 지나가는 요충지에 있어

역사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러한 입지 조건 때문에 므깃도는 자주 전쟁터로 등장하였다.

 

구약시대 요시야가 전쟁 중 전사한 곳이며,

신약 시대 마지막 전쟁이 있을 아마겟돈(계 16장)이라고도 불렸다.

 

 

므깃도 도시를 모형으로 재현해 놓았다.

므깃도 언덕은 주전 7000년경부터 도시가 세워졌으며,

지금까지 총 27번의 도시 층들이 발견되었다.

 

 

버튼을 누르면 한 세대 건물이 위로 올라가면서

밑에 있는 또 다른 도시층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므깃도는 시대를 지나면서 도시 위에 도시가 형성되면서

현재는 "텔" 즉 언덕으로 되어 있다.

 

므깃도는 원래 므낫세의 분깃으로 배분받았으나

이곳을 정복하지 못해서 벧스안과 다아낙 같은

다른 이스르엘 골짜기의 도시들과 함께 거주하였다.

 

 

성문은 시리아 지방에 유행했던 스타일로 지어졌다.

즉 돌을 크게 깎아 쌓아 올렸으며 양쪽에는 방들이 마련되어 있는 구조다.

 

 

므깃도는 다윗에 의해 이스라엘의 도시가 되었다.

그리고 솔로몬은 이곳에 하솔, 게셀과 더불어

철병거성을 건축하여 방비를 하였다. 

 

 

고대에 말은 일반 사람들이 소유할 수 없었으며,

오직 전쟁에 사용되었기에 임금의 소유로

이곳에서 길러졌다고 보고 있다.

므깃도의 크기를 고려할 때 아합 시대에는 450마리나

있었다고 보고 있다.

 

아합시대로 추정되는 수로 주전 900~800년

 

전쟁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식수이다.

특히, 이스라엘은 비가 적게 오기에 물을 보관하는 시설은 굉장히 중요했다.

그래서 전쟁을 위해 므깃도에는

지하에 수로를 건설하였다.

사진에 보이는 수로는 깊이가 무려 30m 나 된다.

 

 

이 수로는 샘이 있는 곳까지 약 70m 정도 수평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곳은 수로의  출구인데, 외부에서는 거대한 벽으로

막아 놓아서 샘이 있는지 알 수 없도록 하였다.

 

 

교통의 요지이자 견고한 성이었던 므깃도는

주전 722년 앗수르에 의해 점령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앗수르는 북 이스라엘을 므깃도와 사마리아로 행정구역을 나누었다.

앗수르도 강성했으나 바벨론에 밀리면서 점차 약화되었다.

 

이 틈을 노리고 요시야는 앗수르에 빼앗겼던 북이스라엘의 일부분을 되찾았다.

그러나 앗수를 돕기 위해 원정에 나섰던

이집트왕 느고에 의해 요시아는 므깃도에서 전사한다.(왕하 23:29)

 

주전 586년 남왕국 유다가 멸망하면서 므깃도에는 더 이상 도시가 건설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므깃도가 가지고 있는 전쟁터의 이미지가 있어서

신약시대는 계시록 16장에서 마지막 전쟁이 있을 곳으로 묘사되었다.

Posted by 아르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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