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수태고지 교회

마리아 수태고지 교회는 나사렛이라는 동네에 위치해 있다.

나사렛에 있던 마리아는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예수님의 탄생을 듣게 된다.

이를 기념하여 세운 교회가 마리아 수태고지 교회다.

 

오늘날 나사렛에는 기독교인, 회교도인, 유대인이 섞여 살고 있다.

특히, 아랍인들 중에 기독교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 중에 한 곳이다.

 

 

므깃도에도 북동쪽으로 약 20분 정도 달리면 나사렛이라는 동네가 나온다.

 

 

마리아 수태고지 교회는 나사렛 동네 한복판에 우뚝 서있다.

로마 가톨릭은 나사렛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다

이탈리아 건축가 지오바니 무치오가 설계해서 기념교회를 세웠다.

 

물론 이곳이 역사적 고증을 통해 증명된 장소는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지순례는

고고학적 증거를 찾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에서 일어난 성경의 말씀을 통해

현장에서 다시한번 생생한 감동을 전해 듣기 위해 가는 것이다.

 

교회 2층에서 바라본 전시물들

수태고지 교회의 특징은 각 나라에서 예수님과 마리아에 대한

이미지를 모자이크로 만들어서 보낸 작품들을

교회 곳곳에 전시해 놓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가톨릭에서 한복을 입은 예수님과 마리아의 모습을

모자이크해서 전시해 놓았다.

성지순례객들은 이곳에서 무조건 기념사진 촬영을 한다는!!!!

 

 1층으로 들어가보니 미사가 진행중에 있네요

 

보이는 동굴이 마리아가 수태고지를 받았다는 장소이다.

이곳이 유일하게 지금까지 파괴되지 않은 장소라고 한다.

 

2층은 예배할 수 있는 곳인데 굉장히 넓어요.

벽면 곳곳에는 성경에 이야기를

성화로 묘사해 놓았네요.

 

교회 천정은 백합화 형상을 하고 있어 아름답네요.

이 문양은 마리아를 상징한다고 하네요.

 

수태고지 교회에서 요셉 기념교회로 넘어가다 보면

초대교회 당시 집터가 보인다.

 

마리아 수태고지 교회 옆에는 바로 요셉 기념교회가 있다.

요셉이 목수 생활을 하던 집터 위에 세워진 교회이다.

이곳에서 요셉은 마리아와 결혼해서 예수님과 같이

살았던 장소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교회 내부 모습입니다.

 

전승에 의하면 예수님의 공생애 바로 직전에

요셉이 임종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지하에 내려가면 비잔틴 시대 지하 예배소와

곡식창고, 물 탱크 등이 있다.

 

성 요셉 교회는 마리아 수태고지 교회보다 규모 면에서는 굉장히 작다

또한, 예수님의 아버지인 요셉은 성경에 많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아버지로써 성품이 온유하고

신앙심이 있기에 초자연적인 현상을 믿음으로

잘 받아들이고 어린 예수님이

나사렛에서 잘 자랄 수 있도록 사명을 잘 감당하였기에

그의 흔적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나사렛에서 북서쪽으로 4Km 떨어져 있는 곳에

찌포리라는 헬라화된 로마 도시를 볼 수 있다.

 

찌포리에서 가까이 살고 있던 목수 요셉은 이곳에서

목수 일을 했을 것이라 학자들은 생각했고,

예수님도 어린시절 아버지를 따라

이곳에 와서 놀았을 가능성이 많다고 보고 있다.

 

찌포리는 주전 7세기 앗수르가 북왕국을 점령하고

도시를 세웠으며, 헬라 시대까지 북부 지역의 주요 행정 도시의 역할을 하였다.

 

하스모니 왕조가 이곳을 다스렸다가 헤롯에 의해 정복당했다.

그러나 헤롯이 죽자 반란을 일으켰다가

로마에 의해 도시는 전멸했으며 거주민들은 노예로 팔려갔다.

 

후에 헤롯 안티파스가 도시를 재건하였으며,

주후 66~70년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이 정복당할 때 찌포리는

로마에 그 어떠한 저항도 하지 않아 파괴되지는 않았다.

 

찌포리는 주후 363년 갈릴리 지역의 지진으로 인해 잠시 파괴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갈릴리의 중심지로서 유대인과 로마인 심지어

기독교인까지 평화롭게 함께 어울려 사는 도시가 되었다.

 

찌포리가 헬라화된 도시로 상당히 부유했다는 증거가

일반 가정집 바닥에서 모자이크 양식들이 발견된다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또한, 모자이크 양식을 보면 유대교가 점점 헬라에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찌포리는 주후 70년 로마의 예루살렘 정복 과정과

 주후 132년 바르 코크바 혁명 당시에 전쟁에 가담하지 않았고

전쟁과 혁명에 실패한 유대인들이 대거 찌포리로 몰려들면서

이곳은 갈릴리 유대인들의 신앙의 중심지로 서서히 탈바꿈 하였다.

 

극장으로 좌석이 약 4500개 정도 되는 곳이다.

 

찌포리는 갈릴리 유대인들의 신앙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헬라 문명을 받아들이면서 생활은 풍족하였으나

종교적 색깔은 점점 헬라에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기독교의 세력이 점차 커지면서 유대교의 위상은 점점 작아졌고

회당 역시 도시 언저리로 밀려나게 되었다.

 

나사렛에서 북동쪽으로 6Km 지점에 "가나" 라는 마을이 나온다

요한복음 2장에 나오는 가나 혼인잔치 사건의 배경이 되는 곳이기에

순례객들은 이곳을 꼭 방문한다.

 

물론, 현재 우리가 방문하는 "카파르 가나" 보다는

나사렛에서 약 13Km 떨어진 "키르벳 가나"가 원래 성경의 역사가 있었던 장소로 유력하나,

순례객들의 안전을 고려해서 이곳에 교회를 세우고 가나 혼인잔치 교회로

명하고 있다.

 

예수님이 첫 이적을 보이신 가나 혼인잔치 교회!

요한복음 2장

 

내부는 아담한 크기의 예배 장소가 있다.

이곳에서 지하로 내려가면

돌항아리가 나온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다는 예수님 당시 돌항아리!

서로 사진 찍으려고 인기가 많다

 

예수님은 포도주 사건을 통해

우주 만물의 주권이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나다나엘 기념교회

가나 기념교회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나오는 나다나엘 기념교회

예수님의 제자이자 빌립의 친구로 가나가 고향이다.

빌립에 의해 예수님을 소개받았으나,

예수가 나사렛 출신이라 말하자

나사렛에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 하고 회의적이었던 사람이다.

 

그것은 가나라는 지역 자체가 유대여인들과 로마인들 사이에

혼열인들이 대부분이라 정통 유대인들은 갈릴리

사람들을 천시하였기 때문이다.

 

나다나엘 기념교회 묘지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어 밖에서 기념사진 한장!!!

묘지는 작은 정원으로 조성되어 있네요.

 

본인이 나사렛 출신이라 오히려 예수님을 신뢰하지 못했던 나다나엘

그러나 만남을 통해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깨닫고

주의 제자가 된 나다나엘(바돌로매)

 

사회적 편견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나다나엘은

주님을 만나고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지고

사람들을 진리로 인도하는 귀한 삶을 살게 된다.

Posted by 아르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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