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해외여행/이스라엘

이스라엘 - 첫째 날1(지중해변 욥바, 피장이 시몬의 집, 베드로 환상 교회, 가이사랴)

by 아르니온 2019. 8. 30.

지중해변과 텔아비브

 

욥바는 텔아비브의 지중해 해안에서 남쪽지역을 말한다.

히브리어로 "요피" 즉 "아름다움" 이라는 뜻으로 절경이 아름다운 곳이다.

성경에는 베드로가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머물렀던 기록이 있으며,

요나가 다시스로 가기위해 출발하려던 항구가 욥바였다.

또한, 솔로몬이 두로와 시돈에서 백향목을 들여왔던 곳이 욥바라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에스라 3:7절을 보면

바벨론 포로에서 1차 귀국하고 성전을 재건할 때

레바논의 백향목을 들여왔던 곳이

욥바이다

 

욥바 일대는 에게 혹은 갑돌(크레타 섬) 출신인 블레셋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정복 당시

강한 블레셋을 물리칠 수 없었기에

욥바를 정복하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욥바는 앗수르, 바벨론, 헬라에 점령당했다가 마카비 반란 때 비로소

유대인들이 욥바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주전 63년 폼페이 장군이 이스라엘을 점령하게 되었고

헤롯이 유대인의 왕으로 등극하고 욥바를 통해 로마로 나아가려고 했으나

유대인들이 강하게 반발하자, 헤롯은 가이사랴에 항구를 건설하게 된다.

 

피장이 시몬의 집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주는 병사

 

이리로 쭈 ~~ 우욱 올라가라고 하네요

 

올라가는 길에 뒤돌아 보니 지중해변이 멋지게 보이네요

 

이곳이 피장(무두장)이 시몬이 살았던 곳으로 베드로가 머물렀다고 알려진 장소이다

"피장"은 가축이나 짐승의 가죽을 가공하여 상품을 만드는 사람을 말한다.

욥바에서 이곳이 중요한 것은 베드로가 옥상에서 환상을 본 후에

베드로를 청하는 하인들을 따라 가이사랴에 있는 고넬료에게 간다.

베드로는 그곳에서 시몬의 집에서 본 환상이야기를 하던 중에

모인 무리가운데 성령이 임하심을 보고

침례를 베풀게 되어 이방인 선교가 시작되었다.

행 9장

 

예전에는 집 안에 들어가서 깊이 30m나 되는 우물을 구경하고

2층 지붕으로 올라가 베드로가 본 환상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는데, 현재는 입구를 봉쇄하여 들어갈 수가 없다.

 

교회 전경 - 욥바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세워진 교회

 

중앙공원의 한편에 우뚝 솟은 교회가 베드로 환상교회이다.

이 교회는 죽은 여제자 다비다를 살린 것과 피장 시몬의 집에서 환상을 본 것을

기념하기 위해 십자군 시대에 세워졌던 교회의 터 위에 1654년경 다시 세워진 교회이다.

교회 안에는 베드로가 죽은 다비다를 살려내는 장면과

시몬의 집 옥상에서 보았다는 환상의 한 장면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

 

베드로 교회 내부 모습

 

정면에 보이는 벽화가 옥상에서 환상을 보고 있는 베드로의 모습이다.

 

교회 밖 전경사진

 

교회 밖에서 보이는 지중해변과 텔아비브는 정말 아름답다.

 

욥바는 볼 곳이 많은데, 순례 일정상 다 볼 수가 없어서

아쉬움을 뒤로하고 가이사랴로 출발해 본다.

 

가이사랴 매표소

 

가이사랴는 욥바에서 북쪽으로 약 40Km 떨어진 지중해변의 해양 도시이다.

가이사랴는 구약의 전통이 전혀 없으며, 헤롯이 BC 22~10년 경에  건설한 도시이다.

당시 헤롯은 로마의 황제 가이사 아우구스투스에 대한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 이름을 가이사랴로 칭하였다.

 

신약시대 가이사랴는 휴양도시이자 유대 총독이 평상시 머물던 곳이었다.

그래서 유월절에만 총독이 민란을 대비하여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이다.

 

가이사랴에 주둔하고 있던 백부장 고넬료는

욥바에 머물고 있던 베드로를 초청하여

이곳에서 설교를 듣다가 성령을 경험하고

베드로에 의해 침례를 받고 최초의 이방인 크리스천이 되었다.(행 10:1-43)

 

사도 바울 역시 이곳에서 복음을 위하여 죽음을 불사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가

고초를 겪고, 다시 가이사랴로 끌려와서 2년 동안 감옥생활을 한다.

그러나 바울은 그 2년의 감옥생활 동안 로마에 대한 복음 전파의 꿈을 꾸다 결국

로마로 향하는 배에 오르게 되면서, 가이사랴가 로마 선교의 출발지가 된다.

 

본디오 빌라도 총독 석비

 

1961 상부 궁전의 안뜰 중앙에서 라틴어로 로마 총독의 이름이 새겨진 석비가 발견되었다.

그 이름은 바로 "본디오 빌라도"였다.

빌라도는 주후 26~36년 유대 지역을 통치했던 로마의 5대 총독으로

신약성경과 역사가 필로와 요세푸스의 짧은 언급 외에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성경에 등장한 본디오 빌라도가 거짓이라고 주장하며 성경을 부인했으나,

이 석비가 발견되므로 성경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귀한 자료이다.

 

전차 경기장

 

1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어마 어마한 크기의 전차 경기장이다.

전차도 약 40~50 대 정도 운영을 하였다고 합니다.

 

경기장 바닥에는 모래가 많이 깔려 있다고 하는데 이것을 "아레나"라고 합니다.

그것은 경기중에 사고가 나서 사람들이 피를 많이 흘리게 되는데

그 피가 빨리 스며들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가이사랴 극장 - 약 4천 명 정도 수용가능

 

요세푸스에 의하면

헤롯 아그립바는 가이사랴에 와서

극장에서 백성들에게 연설하였을 때

주의 사자가 보낸 벌레에게 먹혀 죽었을 것으로 본다.

(행 12:20~23)

 

현재 가이사랴 극장에서는 매년 음악회라든가 연극 등이 공연되고 있어

고대 극장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게 한다.

 

헤롯의 하부 궁전의 수영장 모습

 

헤롯은 자신의 건축물 중에 궁전을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라 불렀지만

현재는 다 파괴되었고 궁전의 바닥과 그것을 유지해 온 바닥만이 남아 있다.

 

가이사랴는 자연경관이 좋으나 자연적으로는 방파제 기능을 할 수 없는 곳이다.

그러나 헤롯은 많은 유대인들을 동원해서

이곳에 항구를 건설하였다.

지금은 다 파괴되었고, 하늘에서 바라보면 바다 밑으로

형성된 방파제 기초들이 그 윤곽만을 보여주고 있다.

 

시간이 되면 꼭 한 번 들러보고 싶은 카페!!!!

단체로 이동하다보니 커피 한잔 마실 여유도 없네요.

다음에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이곳에서 꼭 차 한잔 하면서 짧은 휴식을 가져보고 싶네요.

 

가이사랴는 적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성벽 주위를 이렇게 해자처럼 파 놓고 물을 채워서

성벽을 방어하였다고 하네요.

 

가이사랴는 워낙 넓어서 성지순례 코스로 가면

전체를 둘러보기가 힘들다.

그래서 이곳은 소 그룹으로 가서 천천히 둘러보아야만

가이사랴를 어느정도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가이사랴의 수로(도수교)

 

가이사랴는 샘이 없어 빗물과 작은 우물을 사용했기에

도시로 성장할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헤롯은 그러한 생각을 바꾸기 위해

로마식 물 공급 시설인 수로(도수교)를 건설했다.

 

헤롯의 수로는 21Km 떨어진 갈멜 산 기슭에서 끌어온다.

이후 도시가 성장하자 주후 130년 경 로마의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탄니님 강에서부터 6Km의 수로를 건설해

헤롯의 수로와 만나게 했고 수로의 폭도 확장시켰다.

 

 

주후 69년 베스파시아누스는 가이사랴를 유대의 수도로 삼았다.

그리고 주후 70년 유대 지역과 예루살렘을 정복한 디도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가이사랴에서 검투사 경기가 열렸다.

당시 경기에 투입되어 학살당한 유대인의 인구는 무려 2500명에 달했다.

가이사랴는 로마의 문화가 아주 번성한 도시였다.

 

그러나 복음은 이런 곳에 베드로와 바울을 통해 전초기지로 삼았으며,

이방인에게 최초로 침례가 행해진 역사적인 곳이 가이사랴다.

이러한 복음의 뿌리는 결국

주후 200년경 가이사랴를 기독교인들의 중심지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