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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이스라엘

이스라엘 - 첫째 날2(갈멜산, 이스라엘 무덤, 므깃도)

by 아르니온 2019. 9. 4.

갈멜산은 열왕기상 18장의 배경이 되는 곳으로

우리에게는 굉장히 익숙한 지명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곳은 갈멜산이라 불리기보다 무크라카(Muhraga)로 불린다.

즉 "불이 내려온 곳" 이라는 뜻이다.

 

가이사랴에서 해변길을 따라 북쪽으로 달리다 보면

남으로는 샤론평야,

북으로는 이스르엘 평원 사이에

우뚝 솟아 있는 곳에 위치해 있다.

 

 

갈멜산 입구
갈멜산 수도원

 

수도원 입구로 들어가면

올리브 나무로 만든 십자가나 여러 종류의 기념품을 판다.

난 이곳에서 늘 나무 십자가를 사곤한다.

 

그리고 2층으로 올라가면 전망대가 나오는데

날씨가 좋으면 저 멀리 지중해도 보인다.

 

 

화살표 방향으로 가면 나오는 곳을

지명으로 표기해 놓았네요.

2시 방향에 바다라는 표시가 지중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보이는 곳이 이스르엘 평야입니다.

이스라엘의 최대 곡창지대랍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전쟁도 많이 났고,

많은 사람들이 피흘렸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봉우리는

왼쪽이 다볼산, 중앙이 모레산, 오른쪽이 길보아산이다.

 

 

아래를 보면 정확한 지점을 찾기는 어렵지만

엘리야 당시 이곳에 기손강이 흘러갔던 시내가 있답니다.

엘리야는 아합 왕 당시 산 정상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와 대결에서 승리 후

저 아래 기손 시내에서 바알의 선지자들을 죽였다.

 

 

정상에서 서쪽으로 바라보면 지중해가 보이는데

그곳에서 구름 한 조각이 떠올라 비를 내리게 하여

가뭄을 그치게 하였다.

 

갈멜산은 비가 많이 오고 물이 많으며

넓은 평야가 형성돼 있어 예로부터 풍요로운 곳이다.

특히, 아합 시대는 이스라엘이 크게 번영을 이룩한 시대였는데

오히려 백성들은 영적으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를 섬기며

극도로 타락했던 시기였다.

 

그러나 엘리야 선지자는 갈멜산 꼭대기에서

홀로 영적 싸움을 통해 참신이 누구인지를 백성들에게 가르쳤으며,

종교개혁을 이끌었던 그 시대에 참 선지자였다.

 

갈멜산에서 므깃도로 이동하다 우연히 보게 된 동굴

왼쪽에 원형으로 된 돌을 오른쪽으로 굴리면

입구가 막아지게 되어 있다.

예수님 정원무덤에 가면 이보다 큰 무덤을 볼 수 있다.

 

므깃도 입구

므깃도는 동쪽 내륙으로 갈 수 있는 와디 아라의 길목에 위치해 있으며
남쪽 이집트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는 해변길이 지나가는 요충지에 있어

역사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러한 입지 조건 때문에 므깃도는 자주 전쟁터로 등장하였다.

 

구약시대 요시야가 전쟁 중 전사한 곳이며,

신약 시대 마지막 전쟁이 있을 아마겟돈(계 16장)이라고도 불렸다.

 

 

므깃도 도시를 모형으로 재현해 놓았다.

므깃도 언덕은 주전 7000년경부터 도시가 세워졌으며,

지금까지 총 27번의 도시 층들이 발견되었다.

 

 

버튼을 누르면 한 세대 건물이 위로 올라가면서

밑에 있는 또 다른 도시층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므깃도는 시대를 지나면서 도시 위에 도시가 형성되면서

현재는 "텔" 즉 언덕으로 되어 있다.

 

므깃도는 원래 므낫세의 분깃으로 배분받았으나

이곳을 정복하지 못해서 벧스안과 다아낙 같은

다른 이스르엘 골짜기의 도시들과 함께 거주하였다.

 

 

성문은 시리아 지방에 유행했던 스타일로 지어졌다.

즉 돌을 크게 깎아 쌓아 올렸으며 양쪽에는 방들이 마련되어 있는 구조다.

 

 

므깃도는 다윗에 의해 이스라엘의 도시가 되었다.

그리고 솔로몬은 이곳에 하솔, 게셀과 더불어

철병거성을 건축하여 방비를 하였다. 

 

 

고대에 말은 일반 사람들이 소유할 수 없었으며,

오직 전쟁에 사용되었기에 임금의 소유로

이곳에서 길러졌다고 보고 있다.

므깃도의 크기를 고려할 때 아합 시대에는 450마리나

있었다고 보고 있다.

 

아합시대로 추정되는 수로 주전 900~800년

 

전쟁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식수이다.

특히, 이스라엘은 비가 적게 오기에 물을 보관하는 시설은 굉장히 중요했다.

그래서 전쟁을 위해 므깃도에는

지하에 수로를 건설하였다.

사진에 보이는 수로는 깊이가 무려 30m 나 된다.

 

 

이 수로는 샘이 있는 곳까지 약 70m 정도 수평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곳은 수로의  출구인데, 외부에서는 거대한 벽으로

막아 놓아서 샘이 있는지 알 수 없도록 하였다.

 

 

교통의 요지이자 견고한 성이었던 므깃도는

주전 722년 앗수르에 의해 점령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앗수르는 북 이스라엘을 므깃도와 사마리아로 행정구역을 나누었다.

앗수르도 강성했으나 바벨론에 밀리면서 점차 약화되었다.

 

이 틈을 노리고 요시야는 앗수르에 빼앗겼던 북이스라엘의 일부분을 되찾았다.

그러나 앗수를 돕기 위해 원정에 나섰던

이집트왕 느고에 의해 요시아는 므깃도에서 전사한다.(왕하 23:29)

 

주전 586년 남왕국 유다가 멸망하면서 므깃도에는 더 이상 도시가 건설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므깃도가 가지고 있는 전쟁터의 이미지가 있어서

신약시대는 계시록 16장에서 마지막 전쟁이 있을 곳으로 묘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