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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이태리

이태리 첫째 날(바리항, 마조레 교회, 본젤라또, 트레비 분수, 베네치아 광장, 로마의 공회장, 포로 로마노, 사크라 거리, 쿠리아, 콜로세움,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by 아르니온 2020. 1. 22.

그리스 일정을 끝내고 파트라항에서 배를 타고

이태리 바리항에 도착을 했다.

 

원래 이태리에 도착하면, 폼페이로 가는 일정이었는데

그러면 로마에 늦게 도착하게 되어

시내를 둘러볼 시간이 없는 관계로

폼페이를 포기하고 바로 로마로 향했다.

 

로마에 일찍 도착한 우리 일행은

시가지를 걸으면서 로마의 밤을 맞이했답니다.

 

우리가 그리스에서 이태리까지 밤새 타고 온 훼리!

배가 커서 그런지 흔들림도 없고

저녁 식사도 그런대로 괜찮았답니다.

하지만, 좁은 방에서 4인이 함께 써야 되기에

약간 불편한 것은 있네요.

 

로마의 테베레 강을 건너면

포로 로마노와 트레비 분수등

오늘 우리가 봐야 될 로마의 유적지들을

만나게 됩니다.

 

로마는 기원전 753년 시작된 이후로

오랜 기간동안 세계 역사를 지배하고 영향력을 끼쳤던 나라이다.

특히, 예수님 시대도 이스라엘이 로마에 속국으로 있었던 관계로

성경에 많은 부분들이 로마에 영향을 주고 받으며

쓰여졌다.

 

사도행전 28장 15절을 보면

바울이 로마에 도착한 후

"트레이스 타베르네"라는 동네에 머물게 된다.

이곳은 오늘날 로마 외곽에 자리한

"산 칼리스토 카타콤"이라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그곳에는 쿼바디스 교회가 세워져 있다.

 

우리 일행은 바울이 도착하고 순교하기까지 감옥에 있었다는

장소를 다음날 방문하기로 하고

오늘은 로마 시가지 투어를 하였다.

 

이곳은 산타마리아 마조레 교회라는 곳으로

로마의 4대 바실리카식 교회랍니다.

 

시내를 걷다보면 이태리에서 반드시 먹어보아야 할

 본 젤라또!!!!

 

정말 맛있는 아이스크림!!!

일행만 없으면 한 개 더 사먹었을 젤라또!

 

젤라또를 먹으면서 조금 걸어가니

트레비 분수가 나오네요.

 

앗! 내 평생 처음으로 방문했는데

공사중이라니!!!

 

트레비 분수 때문에 이태리를 다시한번 와야 될 것 같아요

 

트레비 분수는 "처녀의 샘"이라는 뜻으로

전쟁에서 돌아온 병사들에게 물을 준 한 처녀의 전설을

기념하며 분수로 만든 것이다.

 

트레비 분수가 유명한 것은 바로크 양식의 마지막 최고 걸작품인 것도 있지만,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주인공인 마스트로이안니와

여주인공이 분수에 뛰어드는 장면이 나와서

더욱 유명세를 갖게 되었다.

 

트레비 분수에 오면 여행객들이 너도나도 동전을 던지는데

분수를 등지고 동전을 던져서 한개를 넣으면 다시한번 로마에 오게되고

두개를 넣으면 사랑이 이루어지며

세개를 넣으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다고 하네요.

 

빅토르 엠마뉴엘 2세 기념관!

통일 이탈리아 초대 왕인 빅토르 엠마뉴엘을 기념해서 지은 건물입니다.

 

박물관 앞에 넓은 곳은 베네치아 광장이라고 합니다.

 

베네치아 광장에서 콜로세움으로 가는 사크라 거리 양쪽으로

로마 공회장(포로 로마노)과 황제들의 공회장이 자리하고 있다.

 

포로 로마노는 고대 로마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로마인들의 공공 광장을 일컫는다.

이곳에는 황제들의 궁전과 신전, 그리고 원로원 등이 자리잡고 있다.

 

트라이아노 시장

포로 로마노는 팔라티노 언덕과 연결되어 있으며,

여러 황제를 거치면서 발전하였는데

아우구스투스가 이곳에 황궁을 건립하면서 크게 발전하였다.

그 뒤를 이어 티베리우스 황궁, 칼리골라 황궁, 플라비 황궁, 세티모 세베리오 황궁이

차례로 지어지면서 포로 로마노는 확장되었다.

 

로마의 공회장(포로 로마노)은 길게 나 있는 사크라 길을 걸어가다보면

카피톨리노 언덕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

 

이 길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로마의 장군들이

산더미 같은 노획물과 전쟁 포로를 이끌고

화려한 승전 개선식을 했던 곳이다.

 

우리 일행도 터키, 그리스를 지나 이태리까지

바울이 걸어간 복음의 여정을 따라

12박 13일을 순례하면서

화려하지는 않지만

다친 사람 없이 은혜로 여기까지 와서

이 길을 걷게되니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보이는 건물은 쿠리아 라는 곳인데

고대 로마 원로원의 모임장소로 사용하던 곳으로

공화제 시절에는 정치의 최고 기관이었다.

원로원들의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지붕을 높이 올린 것이 특징이다.

 

저 유명한 카이사르가 바로 쿠리아에서 암살을 당했다.

 

공회장(포로 로마노)는 일직선으로 난 사크라 거리를 걸으면서

양쪽으로 자리하고 있는 유적지를

보는 짧은 코스랑

팔라티노 언덕을 올라갔다 내려와서

다시 포로 로마노를 자세히 살펴보는 긴 코스가 있다.

 

우리 일행은 시간이 없는 관계로

신성한 거리를 걸으면서

포로 로마노를 조망하며 콜로세움까지 걸어갔다.

 

사크라 거리를 걸어가면 길 끝지점에

콜로세움과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이 자리하고 있다.

 

콜로세움은 플라비 가문의 베스파시안 황제가

서기 72년 착공하여 아들인 티토 황제(예루살렘 함락시켰던 장군)가 서기 80년에 완공했다.

특히 이 콜로세움을 세울 때 유태인 포로들이 잡혀와 공사를 하였다.

 

콜로세움은 약 6만여 명에 관객이 들어갈 수 있으며,

외부에서 보면 3층으로 되어 있는데

1층은 도리아식, 2층은 이오니아식, 3층은 코린트식 벽 기둥으로 장식되었다.

80개의 아치형 문이 원형을 이루며

네 방향으로 대형 아치로 장식된 특별 출입문이 4개가 있었으나

현재는 황제 전용 출입문만 남아 있다.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은 기원 후 312년

밀비오 다리 위에서 벌어진 막센티우스와의 전투에서

콘스탄티누스가 거둔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로마의 원로원과 시민들에 의하여 사크라 거리 공회장의 가장 외곽에 세워졌다.

 

이 전쟁으로 인해 가장 큰 혜택을 받은 이들은

바로 기독교인들이다.

그것은 콘스탄티누스가 전쟁 후 기독교를 공인하였기 때문이다.

 

이태리에서 첫 날은 이렇게 늦은밤까지 투어로 마무리를 했네요

로마의 공회장(포로 로마노)은

굉장히 넓어서 하루정도 시간을 따로 빼서 투어를 해야 될 것 같아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공회장 안으로 들어가서 자세히 살펴보고

콜로세움도 밖에서 조망이 아니라

들어가서 살펴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