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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그리스

그리스 둘째 날-2(빌립보 유적-바실리카 교회, 바울 실라 감옥, 루디아 교회, 문밖 강가 침례터)

by 아르니온 2020. 1. 9.

빌립보는 바울이 도착한 항구인 네압볼리에서

북서쪽으로 13Km 떨어져 있으며

로마 시대의 중요한 도로인 에그나티아 도로(이스탄불 ~ 로마)가 지나가고 있는

교통의 요지였다.

 

빌립보를 위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빌립보에 도착해서 우리 일행이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이

원형 극장인데 그 중에서도

이 장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곳은 죄인들과 기독교인들을 사자와 싸우게 해서

관객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사자와 호랑이를 키웠는데

사자와 호랑이가 이 문을 통해 나왔다고 하네요.

 

기독교인들은 싸움을 하기 전에 온 몸에 양의 기름을 바르고

양의 털을 뒤집어 쓰게 하였다고 하네요

그리고 사자는 20일을 굶겼다가

대결을 하게 하였답니다.

 

경기는 하자마자 싱겁게 끝나는데

원래 사자는 고기를 찢어먹는 짐승이 아니라 뜯어먹는 짐승인데

20일을 굶은 사자가 화가나서

사람을 보자마자 다 찢어버린다고 하네요.

 

보이는 극장은 원래 원형극장으로 7,500명 정도

수용가능한 곳이었지만

지금은 많이 파괴되어서 약 4,500명 정도 수용할 수 있다.

 

바실리카 A

이곳은 비잔틴 시대 교회터다

비잔틴 시대 교회터로 사용되었는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것은

유적터 지하에서 납골당이 나오면 교회터인 것이다.

그것은 침례받고 죽은 시체를 40일 동안

포도주에 담가 놓았다가

교회 지하실에 있는 납골당에 가져와서 안치한 후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렸다고 하네요.

그렇기에 지하에서 납골당이 발견되면

그 유적은 비잔티 교회라고 인정되어 졌다.

실제로 이곳에서도 납골당이 발견되었기에 이 유적은

비잔틴 시대 사용된 교회터이다.

 

비잔틴 시대 기둥으로 쓰여졌으며

예수님의 사랑을 강조하는 것이다.

 

길 하나를 놓고 이쪽은 바울과 실라 감옥터이고

길 건너는 바실리카 B 교회터가 있는

빌립보 유적지이다.

 

사도행전 16장 16~40을 보면

전도하러 다니는 바울과 실라를 쫓아 다니면서

하나님의 종이라고 소리지르는 귀신들린 여인이 나온다

계속해서 바울을 쫓아다니며 괴롭히자

바울은 기도를 통해 귀신을 쫓아내 버린다.

 

그런데 문제는 귀신들린 여인을 통해 점을 쳐서 돈을 벌던 상전이

돈벌이가 끊어지자 악심을 품고 바울과 실라를 고소하였고

그로인해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 때 바울과 실라가 갇혔던 장소라고 알려진 감옥이

이곳이다.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 찬송하며 기도하자

지진이 나서 옥문이 열린다.

잠결에 놀라서 일어난 간수는 옥문이 열려있는 것을 보고

죄수들이 탈옥하였는 줄 알고 자결하려하자

급히 바울이 말린다.

 

이 모든 급박한 상황에서 간수는 바울과 실라에게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냐고 묻고

이에 대한 대답으로 저 유명한

행 16:31절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라는 말씀이 선포된 것이다.

 

감옥은 보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생긴 동굴을 조금더 확장해서 만든

자연 감옥 같은 곳이다.

그래서 지진이 나면 감옥은 쉽게 무너지거나

옥면이 열릴 수 있게 되어 있다.

 

바울과 실라 감옥을 나와서 길 건너 빌립보 유적지로 걸어갑니다.

 

빌립보 유적지는 굉장히 넓은데 아직도 유물들이

길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모습이 조금 아쉽네요.

언제나 제 모습을 갖추고 성지순례객들을 맞이할지!!!

 

유적지 오른쪽으로 나 있는 길이 바로

이스탄불에서 로마까지 연결된

에그나티아 대로이다.

폭이 6m 정도 되어서 마차도 다녔다고 하네요.

 

에그나티아 도로라는 표시!

 

사도 바울이 도착했을 당시에는 건물들이 없었으며

그저 넓은 아고라 즉 저잣거리였다.

 

비마 터

바울이 2차, 3차에 걸쳐 들렀던 빌립보!

이곳에는 유대인 회당이 없었기에 회당에서 설교할 수 없어서

비마에서 복음을 전했다고 하네요.

 

이 장소는 교회가 아니라 수도원이다.

AD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기독교가 공인 된 후

로마가 다스리는 지역들은 4C, 5C, 6C에

본격적으로 교회들이 세워졌는데

이곳은 AD 340년 지어진 것으로 증명되었다.

 

그렇기에 바울을 기념해서 지은 곳중에

전 세계적으로 가장 최초의 수도원이 바로 이곳이다.

 

바닥은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그 당시 대리석은 굉장히 비싸서 일반 집이나 공공장소에서는

모자이크를 사용하였다.

그러다 6C기 화재로 전소되었다가

다시 지었는데 그때는 대리석을 사용하였기에

현재 바닥은 모자이크와 대리석이

함께 깔려있다.

 

바실리카 B

보이는 건물은 바실리카 교회인데

벽체와 지붕은 다 무너져서 없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잔해들을 조합해서

겨우 기둥 몇 개만 복원해 놓았네요.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산이 "팡게오" 라는 산인데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필리포스 2세는

저 곳에서 금광(1년에 2달란트의 금을 캐냄)을 발견하여

막대한 군자금으로 군대를 양성하여

그리스를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바실리카는 원래 고대 로마인들의 공공건물을 칭하는 데 사용하였으며,

비잔틴 시대 교회 건물들은 이 바실리카 양식을 따라

교회를 건축하였다.

 

빌립보는 바울과 실라가 매를 맞아가면서 복음을 전한 곳으로

그 이후에 엄청난 부흥을 경험한다.

바울은 이곳을 떠나면서 누가에게 빌립보를 맡긴다.

그것은 누가가 이 지역 출신이기 때문이다.

즉 누가는 부모가 귀족 출신이었으나

도시가 점령당하고 노예의 신분으로 빌립보로 끌려온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노예에게도 글을 가르치는 제도가 있어서

이곳에서 글을 배우고 공부를 하다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가서 의술을 배워 의사가 되어 돌아온다.

그래서 바울은 이 지역 출신인 누가에게 맡기고

계속해서 여정을 이어나간다.

 

이곳은 루디아 기념교회이다.

빌립보에는 회당이 없어서 바울 일행은 기도하기 위해

강가로 왔는데 그곳에서 자주장사 루디아를 만난다.

루디아는 바울의 말씀을 듣고 복음을 받아들인

유럽의 첫 열매인 것이다.

 

루디아는 바울 일행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였고,

루디아와 그의 온 집안 식구들은 침례를 받고

유럽 최초의 기독교인이 되었으며

루디아의 집은 유럽 최초의 가정 교회가 되었던 것이다.

 

교회 입구에 걸려 있는 바울(중앙)과 디모데(왼쪽) 그리고 누가(오른쪽)그림

 

가운데는 루디아 그림도 보이네요

루디아는 우리가 흔히 이름으로 알고 있는데

원래는 이름이 아니라 지역을 의미한다.

즉, 서머나 교회가 있는 리디아 지역에서 온 여인을 루디아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루디아는 소아시아에서 그리스로 넘어 온 여인이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유럽의 첫 그리스도인은 아시아 여인인 것이다.

 

바울이 강가에서 복음을 전하는 모습!

 

교회 내부는 성화그림이 그려져 있네요.

 

루디아 침례터

간지테스 강에서 루디아와 그의 가족은 침례를 받았으며

이를 기념하여 간지테스 강줄기에 침례터를

만들어 놓았다.

 

사도행전 16장 15절 말씀의 배경이 되는 장소

 

루디아 기념교회 바로 앞이 간지테스 강이다.

아시아 여인으로 마게도냐에 이주해

살아가야 하는 기구한 여인 루디아는 이곳에서

바울을 만나 복음을 듣고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지 않았나 싶다

그리스도인이 된 루디아는 바울의 사역을 적극적으로 돕고

바울이 이곳에서 머물 수 있도록 재정적 도움도

아낌없이 제공한다.

 

그녀의 그런 헌신을 후대에 사람들은

유럽 최초의 그리스도인!

유럽 최초의 가정교회! 라는

귀한 칭호를 허락한다.